커피가 재배되는 지역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적도 인근의 선선하고 비옥한 고산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인도네시아 로부스타'와 같이 저지대에서 재배되는 커피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라비카 커피'는 기후가 일정한 고산지대에서 재배됩니다.
이런 이유로 커피의 이름에는 산 이름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쿠바 크리스털마운틴'처럼 말이죠. 그중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탄자니아 킬리만자로(Tanzania Kilimanjaro)' 입니다. '킬리만자로'란 이름의 신비로움은 '마운틴'이라는 정복자들의 무성의한 작명을 압도합니다.
아프리카의 성산 '킬리만자로'
여러 품종의 미묘한 맛의 차이가 커피라는 음료의 핵심요소라고 볼 때, 커피의 이름은 분류의 틀이자, 그 커피의 캐릭터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이 되는 산 ‘킬리만자로’에 대한 재미있는 상식으로 여행기중독자의 커피다이어리를 시작하려 합니다.
'킬리만자로(Kilimanjaro)'는 ‘킬리마(Kilima)’와 ‘은자로(njaro)’의 합성어입니다. 킬리마(Kilima)는 스와힐리어로 ‘산’을 뜻하는 '밀리마(milima)'의 변형입니다. 한편‘은자로(njaro)’에 대한 해석은 분분합니다. 그리고 그 해석에 따라 ‘킬리만자로’라는 이름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최초로 킬리만자로라는 이름을 기록에 남긴 선교사 ‘Krapf’는 이를 ‘위대한 산’이라고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은자로(njaro)’의 어원에 대한 언급 없이, 그 이름을 알려 준 이들이 카라반(caravans, 대상)들이었기에, 그들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산, 이정표가 되어주는 산이라는 의미에서 위대하게 여겼을 것이라 추측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처음 킬리만자로를 ‘위대한 산(mountain of greatness)“이나 ”카라반의 산(mountain of caravans)“으로 부르게 된 이유입니다.
한편, 마사이족의 언어에서 은자로(njaro)와 비슷한 단어는 ‘물(ngare)’이라고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물은 귀합니다. '물의 산’은 모든 강물이 시작되는 곳을 의미하지요. 또 다른 은자로(njaro)에 대한 이론으로 소수 종족의 수호신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하네요.
가장 최근의 학설은 킬리만자로를 합성어로 보지 않고 스와힐리어의 한 단어인‘kilemanjaare(정복되지 않는)’이라는 단어에서 찾기도 합니다. ‘킬레만자레’라는 원주민의 발음을 서구인들이 들은 그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킬리만자로’로 바뀌었을 것이라는 추측인데요, 이때 킬리만자로는 인간, 독수리, 혹은 표범 등 어떠한 존재로 부터도 정복당하지 않는 산을 의미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산’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상 출처 Hutchinson, J. A. “The Meaning of Kilimanjaro”, 1965)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해석이 제일 마음에 드는군요. 비록 한때 유럽 강대국들에게 정복당했었지만, 원초적인 자연과 원주민의 민족정신은 정복될 수 없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케냐와 탄자니아는 킬리만자로를 국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북쪽이 케냐이고, 남쪽이 탄자니아입니다. 아프리카 최고의 영산에서 나는 커피이기 때문일까요? 두 나라의 커피는 아프리카 커피 애호가들로부터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커피입니다.
케냐커피는 상큼하면서도 묵직한 맛입니다. 흔히들 ‘적포도주와 같은 맛을 지닌 커피’라고 하고요, 아프리카커피 중 ‘밸런스가 가장 뛰어난 커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진한 향기는 원주민 중에서도 우월한 외모를 가진 마사이족의 모습과도 닮아있고, 충만한 밸런스는 마사이족의 걸음걸이만큼이나 불가사의합니다. 그들의 국기에 그려진 마사이족의 방패에서 느껴지는 긍지가 커피에도 그대로 담겨있다고 봐야겠군요.
한편, 탄자니아 커피는 특유의 신맛과 원초적인 풍미로 ‘가장 아프리카다운 커피’라고 평가됩니다. 아프리카의 가장 높고 신비로운 산 중턱에서 나는 커피가 가장 아프리카다운 맛을 낸다는 사실이 마냥 흥미롭기만 합니다.
자, 이제 킬리만자로의 신비한 바람을 상상하며 두 잔의 커피를 마셔볼까요?
Kenya AA -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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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vs 소설 / 열린책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배경은 케냐입니다. 작가 ‘카렌 블릭센’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한 덴마크 여자가 커피농장을 일구며 겪는 슬픈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광활한 아프리카의 풍경과 그 위에 감미롭게 흐르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그리고 젊은 시절의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의 미모가 빛났던 작품인데요, 최근 원작소설이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원작 소설은 사랑이야기보다는 카렌이 십여 년간 커피농장을 일구며 겪은 이야기들이나 거기서 만난 원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식민지의 침략자이면서도 그곳의 사람들과 현실을 우호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하니, 덴마크의 대표적 여류작가에게서 ‘동화의 아버지, 알고 보면 여행기 전문작가’인 안데르센의 향취가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읽을 책이 또 한 권 늘어나네요.
아프리카의 커피는 식민지 노예 착취의 대표적인 작물입니다. 다행이 카렌 같은 인간적인 주인을 만난 노예들은 좀 덜 고달프기도 하고, 다소의 대화가 가능했겠습니다만, 식민지에서 벌어진 잔혹한 착취의 역사는 어떤 식으로든 미화되거나 무마될 수 없는 슬픈 역사입니다. 케냐커피를 마시며 마냥 모차르트나 메릴 스트립이나 로버트 레드포드에 취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커피 자체가 아니라 강대국들의 탐욕이겠지요.
케냐는 아프리카에서도 비교적 늦게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한 나라로, 1899년 경 선교사들에 의해서 전해져 재배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요, 바로 위쪽에 위치한 에티오피아에서 13세기 경 커피가 탄생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뭔가 두 나라간의 심상치 않은 길고 긴 긴장을 예감케 합니다.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한 케냐의 주요 수출품은 여전히 차와 커피입니다. 식민지 시대의 연속인 것으로만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 내막을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집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케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커피를 생산, 관리하는 나라입니다.
커피가 비록 식민지 대농장을 위해 재배되기 시작한 작물이긴 하지만 독립 이후의 케냐에게 는 가장 중요한 수출작물입니다. 케냐는 개별적인 농장들이 유럽상인들에게 착취당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정부에서 일괄적으로 커피를 관리한다고 합니다.
케냐의 커피 산업은 정부와 농민과 거래업체의 대표자로 구성된 ‘KCTA(Kenya Coffee Trader Association, 케냐커피무역협회)’의 주도하에 생산, 마케팅, 연구, 경영, 재정지원 됩니다. 쉽게 말해 국가주도의 협회에서 커피를 모두 한곳으로 모으고, 품질에 따라 등급을 결정하고, 관리가능한 일정한 장소에서 경매를 하여 품질과 가격을 관리하는 체계입니다.
여기에 커피를 구입하는 외국무역업체들과 국내 거래상으로 구성된 'CBK(Coffee Board Of Kenya, 커피무역협회)'와 'Coffee Research Foundation(커피연구원)‘이 각각 거래와 품질관리와 품종개량 등을 관리합니다.
국가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케냐커피의 이름에는 생산지의 이름 대신 등급이 붙어있습니다. 최상급인 ‘케냐 에스테이트(Kenya Estate)'와 보통의 커피와 다르게 열매 하나에서 한 개의 둥근 콩이 나오는 ’케냐 피베리(Kenya Peaberry)부터, 크기별로 '케냐 AA' '케냐 A' '케냐 AB' '케냐 C'로 분류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케냐 AA' 가 유통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에서 도입하였다고 하는 이 일괄 시스템은 현재, 콜롬비아에서보다 훨씬 철저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케냐에서 함부로 커피나무를 베거나 훼손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라고 하니, 국기에 그려진 마사이족의 방패에서 그들의 완고한 성향이 느껴집니다.
이런 이유로 케냐 커피는 뛰어난 맛과 일정한 품질을 보장하고 있고, 전 세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훌륭한 커피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농민을 상대로 대출이자 장사나 하는 우리네 농협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죠? 정부가 농민들에게 선진화와 경쟁력을 강조할 때는, 같은 강도와 같은 논리로 정부나 농협의 실질적인 선진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정부의 역할은 잘 하는 놈을 밀어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과 함께 다수의 농민이 잘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데 있을 테니까요.
Tanzania Kilimanjaro
흥분을 가라앉히고, 많은 여행자들이 킬리만자로로 향하는 그 길을 따라, 케냐 뭄바사(Mombasa)에서 탄자니아의 모사이(Mosai)로 넘어갑니다.
킬리만자로의 두 봉우리가 보입니다. 하나는 눈을 이고 있고, 하나는 검은 바위입니다. 그래서 봉우리의 이름도 하나는 ‘Kibo (’점‘이라는 뜻으로 흰 눈 위에 있는 검은 돌들을 의미)’이고, 하나는 ‘Kimawenze(날카로운 바위)’입니다.
이곳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부족은 ‘차가족(chagga)’으로, 그들은 이 봉우리들을 그냥‘Kichagga 혹은 Wachagga’(언덕)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들이 왜 킬리만자로를 언덕이라고 부르는고하니,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는 커다란 몸체에 두 봉우리가 마치 뿔처럼 솟아있는 산이어서, 몸체가 언덕처럼 평평하기도 하고, 또 몸체에 붙어있는 두 봉우리가 작아보여 언덕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5800미터의 산을 등정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언덕을 오르는 기분으로 도전하다가는 사경을 헤매기 쉽상이라는군요. 커피 이야기가 너무 여행이야기로 흘러버렸군요. 스와힐리어는 대단히 시적으로 느껴져 자꾸만 그곳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 하는 것 같습니다.
탄자니아는 케냐보다도 늦게 커피재배를 시작하였지만, 그 맛으로는 ‘가장 아프리카다운 커피’로 평가됩니다. 신맛으로 시작해 쌉쌀한 원초적인 풍미로 입안을 가득 채우다가 깔끔한 뒤끝으로 사라지는... ‘원초적인 향기’라고 밖에 표현 할 수밖에 없는 맛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헤밍웨이도 탄자니아 커피를 가장 좋아했다고 하는군요. 맹수사냥을 하면서 커피를 홀짝이는 헤밍웨이, 킬리만자로 설산 아래에서 자동차가 전복되어 둘째부인의 간호를 받으며 사경을 헤매는 헤밍웨이가 떠오릅니다. 도저히 동질감을 느낄 수 없는 그의 라이프스타일에도 불구, 그의 취향은 여행기중독자에게 묘한 환상을 유발시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헤밍웨이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곳을 직접 다녀오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노예무역의 중심이었던 탄자니아의 섬‘잔지바르 Zanzibar’의 눈물은 여전히 마르지 않았으므로, 커피 한 잔에 헤밍웨이만큼 대담하지 못하고, 쿨하지 못한 여행기중독자입니다. 결국 환상이 아닌 아픔을 나누는 것만이 인간적인 태도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좋은 커피는 역시 많은 이야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군요.
로스팅과 브랜딩
두 커피 모두 아프리카 커피 중에서 묵직한 바디를 자랑하는 커피이므로 조금 세게 볶아주어야 합니다. 중간 맛을 받쳐주는 커피인 브라질과 브랜딩을 하면 풍부한 맛을 더할 수 있고, 여기에 에티오피아 커피를 더해주면 향기에서부터 바디까지 버라이어티한 맛을 만들 수 있습니다.
킬리만자로의 신비로운 바람과도 같은 ‘Kenya AA’ 와 ‘Tanzania Kilimanjaro’. 긴 망설임 끝에 불기 시작한 봄바람과 함께 마시기 딱 좋은 맛을 가진 커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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