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이야기/커피 이야기

화합을 부르는 커피, 인도네시아 커피

우석푸른바다 2011. 1. 17. 02:19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예멘의 ‘알 모카’ 항에서 커피나무를 밀반출하여 처음으로 아프리카 밖에서 커피를 재배한 곳입니다. 그리고 커피나무는 인도네시아에서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의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퍼져 북으로는 중국의 윈난, 남으로는 파푸아뉴기니까지 재배지를 넓히게 됩니다. 오늘, 여행기중독자는 커피의 길을 따라 인도네시아로 가봅니다.


 



 

인도네시아는 수마트라(Sumatra), 자바(Java), 칼리만탄(Kalimantan), 술라웨시(Sulawesi)를 비롯하여 1만 8천여 개의 섬을 가진 나라입니다. 각 섬마다 풍토가 달라 커피도 13종 이상이 됩니다. (모두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마셔 본 바에 의하면) 인도네시아 커피는 다른 커피와 만나 커피의 맛을 완성시키는 한편 다른 음식의 맛을 더해주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커피를 ‘화합의 커피’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로부스타(Robusta)와 아라비카(Arabica)



 

커피의 품종은 크게 ‘로부스타’와 ‘아라비카’로 나뉩니다. ‘아라비카 커피’는 재배 조건이 까다롭고 병충해에 약한 품종입니다. 고도 1000미터 이상, 적당한 온도와 강수량이 있어야 재배가 된다고 하는데요, 향과 맛이 로부스타보다 좋다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부터 ‘콜롬비아’나 ‘인도네시아 만델링’등 우리가 사서먹는 대부분의 원두커피가 아라비카 커피입니다.



 

‘로부스타 커피’는 우리말로 자생종, 혹은 야생종이라고도 하는데요, 그 성장 조건이 아라비카에 비해 덜 까다롭고, 병충해에도 강한 품종입니다. 기후 변화가 심하지 않은 수마트라 섬의 넓은 저지대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97%가 로부스타입니다. 기후 변화가 없어서 그런지 맛도 단순합니다. 오로지 로부스타만으로 커피를 뽑을 경우 향기가 없고 쓴맛이 강합니다. 당연히 그 가격도 판매되는 생두 중에 가장 저렴합니다.



 

그런데 향이 커피 맛의 전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로부스타 커피는 그 어떤 아라비카도 능가할 수 없는 강한 뒷맛(after taste)을 가지고 있습니다. 커피를 한 모금 넘기고 나서 커피가 ‘혀에 착 달라붙는 느낌’, 다음 한 모금을 부르는 ‘달짝지근한 쓴맛’, 그리고 아라비카 커피의 세 배에 달하는 카페인 함량의 증거인 ‘혀에 남는 저리한 여운’, 이것이 로부스타의 맛입니다.



 

로부스타의 매력



 

 

 


로부스타 커피는 대개 ‘인스턴트커피’를 만드는 주재료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커피를 진하게 우린 물을 급속 냉동 건조시키는 것이 인스턴트커피 입니다. 커피를 우리면 향기는 날아가고 카페인 함량은 높아집니다.) 자세히 알고 보면 로부스타의 세계는 훨씬 깊고 오묘합니다.


 



 




1. 스페셜티 커피 (Specialty coffee)


 



 

로부스타는 유명한 바리스타가 만든 브랜딩 커피(일명 스페셜티 커피)에 대부분 꼭 들어갑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대체 불가능한 강한 뒷맛 때문입니다. 와인이나 커피 모두 마시고 나서 입안에 남는 맛과 향의 흡착력을 ‘바디(Body)’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로부스타는 향이 좋은 아라비카 커피를 앞으로 보내고, 맨 밑바닥에 머물다 강한 바디감으로 커피를 완성시킵니다.



 

로부스타는 여기에 더해 높은 카페인 함량을 가지고 있어 각성효과라는 화학적인 만족감을 담당합니다. 카페인은 분명 중독을 불러오는 물질이긴 합니다만 각성효과가 커피의 중대한 효능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카페인의 유해성은 여전히 논란 중으로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하네요. 어쩌면 커피에 관해 과학적으로 결론나지 않은 유일한 문제일 것 같습니다.) 요컨대 로부스타는 가장 싼 값에, 가장 뒤에서,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커피의 맛을 완성시킵니다.



 

‘화합이란 희생이 뒤따르는 일일지언정, 조화를 이루는 순간 그 희생은 빛나는 법’이라는 걸 로부스타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갑자기 구호 하나를 외치고 싶네요. ‘희생하는 자여, 그대에게 영광이~’라는.



 

2. 코피 루왁 (Kopi Luwak)



 

따지고 보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도 로부스타입니다. 얼마 전 시트콤을 통해 화재가 되었던 한 봉지에 백만원 한다는 커피인‘코피 루왁’은 수마트라 섬에 사는‘루왁’이라 불리는 사향고향이의 배설물에서 건져낸 커피인데요(베트남에는 원숭이가 그 역할을 한다지요), 수마트라 섬에서 재배되는 커피의 97%가 로부스타라고 할 때 사향고양이가 먹는 커피는 분명 로부스타일 확률이 높습니다.



 

코피루왁은 사향고양이의 동물적 감각에 의해 선별된 맛있는 열매가 , 사향고양이만의 소화효소에 의해 숙성되어서 특별한 맛을 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배설물의 형태는 커피가 배설물에 의해 붙어있는 형태로 우리의 강정과 같은 모양입니다. 오묘한 향과 풍부한 맛이대단하다고 합니다만 지속 가능한 음용을 추구하는 저로서는 맛보기가 두렵군요. 아무튼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싼 커피인 로부스타가 가장 비싼 커피인 ‘코피 루왁’으로 새로 태어나는 과정입니다.



 

3. 변비



 

로부스타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유럽의, 특히 프랑스의 커피 소비량의 절반 이상은 로부스타 입니다. 그 이유는 맛도 맛이려니와 그 효능에 있다고 합니다. 유럽인들에게 변비는 고기를 많이 먹는 식습관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일반적이면서도 심각한 증상이라고 하는데요, 커피의 변비에 대한 효능은 유럽이 커피를 일상적으로 마시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합니다. (<커피 견문록> - 프랑스 혁명과 커피)



 

그 원리는, 로부스타는 향이 없으므로 대개 강하게 볶아서 먹는데요 (특히 프랑스는 숯이 되기 직전까지 볶는다고 합니다. 전문용어로는 ‘풀 시티 로스팅’), 이때 발생된 다량의 탄소성분과 본래 함유된 다량의 카페인이 합쳐져서 변비에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로부스타는 스페셜티 커피의 필수요소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의 원료이며, 유럽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음용되는 변비 치료제요, 우리가 가장 많이 마시는 커피인 인스턴트커피의 원료입니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커피계의 ‘리베로’입니다.



 

‘인도네시아 만델링’과 ‘인도네시아 자바 잠피’



 

‘만델링’과 ‘자바 잠피’는 그 이름이 표현하는 지역에서 소량으로 생산되는 인도네시아 아라비카 커피입니다. 19세기 초, 인도네시아를 휩쓸고 지나간 ‘커피 녹병’에서 살아남은 아라비카 커피들 입니다. 그 맛은 인도네시아 커피답게 향보다는 중간 맛 (2nd taste)에 포인트가 있는데요, 그 자체로도 훌륭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특히 다른 음식과 곁들여 먹을 때 음식의 맛을 오묘하게 돋궈줍니다.



 

그런데 만델링과 ‘자바 점피’가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1. 인도네시아 만델링 (Indonesia Mandheling)



 

 

 

혹자는 만델링의 맛을 두고 ‘비온 뒤의 흙냄새’라고 표현합니다. 첫맛은 약하지만 입 안에 들어와 머무는 순간 지체 없이 향긋한 흙냄새를 강하게 품깁니다. 원초적인 느낌이고, 왠지 몸에 잘 스밀 것 같은 맛입니다. 바디는 로부스타보다는 약하지만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강한 편입니다.



 

음식의 맛에 혀가 익숙해질 즈음 만델링을 한 모금 마셔줍니다. 첫맛이 강하지 않으므로 처음에는 음식을 촉촉하게 적시다가 잠시 후, 강력한 친화력을 발휘하며 음식의 맛에 또 하나의 풍미를 더합니다.


 

원초적인 향기라서 그런가요? 만델링은 그 향기로 음식의 맛과 합쳐지며 제 3의 시너지효과를 불러 일으킵니다. 만델링을 마시며 ‘자연스러운 것이 다양한 시너지효과의 출발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만델링으로 만든 아이스커피는 단연 최고입니다. 아이스커피 이야기는 무더운 여름, 따로 포스팅하기로 하겠습니다.)



 

2. 인도네시아 자바 잠핏 (Indonesia Java Jampit)



 

 

 

‘자바 잠핏’의 뒷맛은 만델링에 비해 강도는 덜합니다만, 은은하게 퍼지는 고소한 맛이 특징입니다. 가벼운 호두 향을 낮고 길게 이어갑니다.



 

‘자바 잠핏’이 음식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일단 처음에는 음식 맛의 밑으로 파고들어 기분 좋은 입가심을 선사합니다. 인도네시아 커피 특유의 존중의 미덕입니다. 그러다가 중간 맛에 이르러 고소한 맛을 풍기기 시작하면 음식의 고소한 맛을 두 배로 만듭니다. 특히 빵이나 과자, 케잌 등 밀가루 음식과 잘 어울리고요, 어떤 음식과 먹어도 씹을 필요 없는 견과류를 뿌린 것 같은 뒷맛을 남깁니다.



 

‘자바 잠핏’의 교훈은 ‘아름다운 화합은 존중에서 시작되는 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하나의 유명한 인도네시아 커피‘술라웨시 토라자(Sulawesi Toraja)’는 아직 먹어보지 못한 관계로 나중에 먹고 나서 보충하기로 합니다.)



 

생두와 로스팅


 


로부스타의 생두는 크고 단단합니다. 콩이 단단하다는 건 골고루 볶아주기 어렵다는 뜻이 되겠죠? 하지만 로부스타는 많이 볶아주어야 제 맛이므로 과감하게 볶습니다. 아래 사진에 불이 붙은 것 보이시나요? 맛있는 오일이 타고 있는 것입니다. 수망으로 로스팅을 하다보면 종종 이런 경우가 생기는데요, 당황하지 마시고 얼른 불에서 떼어내 후후 불어 꺼주시면 됩니다. 로부스타는 물로 세척한 생두이므로 체프가 거의 날리지 않습니다.



 

만델링의 생두는 작은 크기에 진하고 어두운 초록색입니다. 못생겼다고 하기보다는 개성 있는 생김새라고 표현하고 싶군요. 중간 이상으로 볶아주어야 잡냄새가 제거되고 깔끔한 맛을 냅니다.



 

‘자바 잠핏’의 생두는 작고 예쁜 모양입니다. 얌전한 고소한 맛을 풍기기 위해서 인지 모양도 얌전합니다. ‘자바 잠핏’역시 중간 이상(2차 크랙 1분 내외)로 볶아줍니다.



 


부족한 대로 함께


 



 

인도네시아의 국가표어는“Bhinneka Tunggal Ika (빈네카 퉁갈 이카),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고 합니다. 커피의 맛과 국가표어 간의 논리적인 관계를 주장하는 건 억지스러운 일이겠죠? 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의 생존법과 그 나라의 커피특성이 유사하다는 점은 흥미로운 발견 입니다.



 

인도네시아 커피는 일반적으로 맛있다고 하는 커피와는 다른 맛을 지닌 커피입니다. 그렇지만 인도네시아 커피는 나름의 미덕을 밑천 삼아 다른 커피를 만나고, 다른 음식을 만나 최고의 커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것은 빛나는 희생과 다양함의 공존과 일단의 존중이 있기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화합’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절실한 이 시점에, 잠시 인도네시아 커피를 맛보며 그 신비한 힘을 우리에게 불러오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