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이야기/커피 이야기

에티오피아 커피는 왜 신성할까?

우석푸른바다 2011. 1. 17. 02:16

 



 

에티오피아 커피의 개성은 강한 향에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보자면, 일단 커피를 볶을 때부터 강한 향을 풍기기 시작해, 추출한 후에도, 그리고 입 안에 들어오는 그 순간에도 오로지 그 향기로만 사람을 취하게 만듭니다. 여행기중독자는 '기아와 난민으로 유명한 에티오피아에서 이런 커피가 나오다니, 거꾸로 이런 커피가 자라는 나라가 그토록 가난하고 척박하다니...' 하는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왜 신성할까?


 



 

에티오피아 커피는 세계 최초의 커피였습니다. 목동이 유난히 팔팔한 염소를 보고 발견했다는 커피는 그 후 수도사들의 각성을 위한 음식이 되었고, 오로모족의 전투식량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로모족은 현재 에티오피아 인구의 30% 정도라고 합니다)



 

알다시피 그곳은 예나 지금이 척박한 곳이고, 그들의 요리란 것은 ‘은제라’라고 하는 부침개와 고기를 푹 삶아 고기와 국물을 건져 먹는 ‘윗’처럼 단순합니다. 향신료는 로마시대 이후에 들어왔다고는 하는데 지금도 서민들은 비싼 향신료를 충분히 가미하기 어렵겠죠.



 

커피를 볶아먹는 방법을 몰랐던 그 시절, 한 알의 생두가 실수로 모닥불에 떨어져 움막 안을 향기로 가득 채웠을 그 순간, 그들은 얼마나 경이로웠을까요? 그런데 그 최초의 커피가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향이 강한 커피라니 그 또한 새삼 경이롭습니다.



 

그 뿐인가요. 에티오피아는 ‘호모사피엔스 이달투’라는 현생인류와 가장 가까운 유인원의 두개골이 발견된 곳이기도 합니다. 인류와 커피가 시작된 곳이라고 생각하니 에티오피아 땅에는 뭔가 신성한 기운이 있는 것만 같습니다.





 

에티오피아 커피의 향기가 신성한 또 다른 이유는 ‘훈증소독’에도 있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과거 사람들은 좋은 연기가 병균을 소독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안데르센의 여행기에 보면 다뉴브 강을 건너며 훈증소독을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다뉴브 강 저편에 역병이 창궐하자 강 건너에서 온 사람들을 상대로 역병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40일 정도 집단 수용을 하였습니다. 이때 그들이 하루 한 번씩 하던 검역조치는 다름 아닌 약재를 태운 연기를 쐬는 훈증소독.



 

이러한 훈증소독의 예는 키르기스스탄의 유목민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요, 처음 천막을 치고 나서 간난 아기를 들이기 전에 좋은 향기가 나는 나뭇잎을 태워 공기를 소독합니다. (EBS 다큐 프라임 ‘중앙아시아의 스위스, 키르기스스탄’편)



 

18세기 중반의 유럽,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까지도 연기의 효험을 믿고 있는 걸 보면, ‘칼디’라는 목동이 커피를 발견한 9세기에 퍼졌을 커피연기의 신성함은 대단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에티오피아 커피를 마시면 항상 이 기도문이 떠오릅니다.



 

엘레 부나 나가이 누클렌 (커피주전자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고)

엘레 부나 이졸렌 하구다투 (커피주전자는 아이들을 자라게 하며)

후르마티 하구다투 (우리를 부자가 되게 하나이다)

완 함투 누라 도우 (부디 우리를 악에서 보호하여주시옵고)

보카이 마르그 누켄 (우리에게 비와 풀을 내려주시옵소서)



 

- 가리족과 오로모족의 기도문 (스튜어트 리 앨런의 <커피 견문록> 중)



 

에티오피아 커피에 대한 원주민들의 종교적 경외심은 이 마지막 구절, ‘우리에게 비와 풀을 내려주시옵소서’에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오로모족은 섹스와 죽음을 찬양하는 ‘분칼레(bun-qalle)’라는 의식에서도 나이든 사람들이 버터에 볶은 커피를 씹고 사람들을 축복한다고 하니, 에티오피아 커피 향기는 원시적인 신성함의 향기라 여겨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에티오피아 커피의 종류



 

에티오피아 커피의 생두는 다른 종류의 커피보다 크기가 작고, 투명한 초록색입니다. 대개 생두는 고온 다습하고 토양이 비옥할수록 크기가 커지고, 볶았을 때 기름이 많습니다. 그러니 에티오피아 커피는 건조하고 척박한 그곳의 풍토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티오피아 커피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이가체프, 에티오피아 모카 시다모, 에티오피아 모카 하레르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모카란 한때 커피거래의 중심이었던 예멘의 유명한 항구이름(알 모카, Al-mokha)으로, 나중에는 커피의 다른 이름이 되기도 하였으며, 향기가 좋은 커피를 따로 부르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에티오피아 커피의 공통점은 생두의 모양이 거의 비슷하고, 모두 강한 향을 가지고 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가볍다는 점입니다. 즉, 첫 향은 매우 강하지만 입 안에 들어갔을 때나 삼키고 나서의 느낌은 강하지 않습니다. 한편 각 종류별로 그 향의 정도와 밸런스는 약간씩 다른데요, 그러니 다른 이름이 붙었겠지요. 다음은 제가 마셔 본 바에 의한 맛의 차이입니다.

 


 


 

* 에티오피아 이가체프
(Ethiopia Yirgacheffe)


 



 

향(aroma)이 가장 강합니다. 중간 맛(second taste)과 뒷맛(after taste)은 유난히 가볍고 신맛과 쓴맛이 강합니다. 고로 흐리게 추출해서 먹을 때는 뒤를 받쳐주는 커피와 블랜딩을 하면 강한 향이 있는 밸런스를 만들어 줍니다. 에스프레소로 진하게 추출하는 것도 뒤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이가체프로 뽑은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듬뿍 넣으면 지구상에서 가장 환성적인 커피가 됩니다.



 

* 에티오피아 모카 시다모

  (Ethiopia Mocha Sidamo)



 

이가체프보다 향은 덜하지만 에티오피아 커피 중 밸런스가 가장 좋습니다. 스트레이트로 드립 할 경우 시다모가 최고입니다.



 

* 에티오피아 모카 하레르

  (Ethiopia Mocha hararr)



 

하레르의 맛은 이가체프와 시다모의 딱 중간입니다. 개성이 약한 탓일까요? 하레르에서 커피 중개상을 했던 시인 랭보는 사실 하레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그는 무기 중개도 했다고 합니다). 지저분하고 커피도 맛이 없는 곳이라고 불평했다고 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그는 여기서 몹쓸 병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하레르 커피의 묘한 밸런스는 예맨으로 건너가 재배되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커피인 ‘예맨 모카 커피’를 탄생시킵니다. 하레르는 맛 그 자체보다 랭보(현지인들은 ‘람보’라고 부른다지요)나 예맨 커피를 상기시키며 강한 추억의 향기를 풍기는 커피입니다.


 

 


 


 

* 로스팅의 주의점



 

대개 향이 강한 커피의 경우, 너무 많이 볶지 말라고 합니다. 커피가 볶아질수록 향이 약해지고 쓴맛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로스팅 표준 도표를 보면 황토색으로 표시 될 정도로 약하게 로스팅하라고 합니다만, 제가 마셔 본 결과로는 이렇게 볶으면 씁쓸한 생콩 냄새가 남아 중간 맛이나 뒷맛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따로 블랜딩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2차 크랙을 잠깐 하고 옅은 갈색이 날 때까지 볶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조금 많이 볶아도 그 강한 향은 어디 가지 않습니다.



 

또 한가지, 에티오피아 커피의 생두는 작고 단단하므로 태우지 않도록 조금 더 신경을 써 줘야 합니다. 더 빨리 돌리고, 자주 뒤집어 주어야 한다는 뜻. 로스팅하는 동안에 체프가 많이 날리는 편이고, 향기도 강합니다.



 

로스팅을 하고나면 신성한 연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웁니다. 이제 기도를 해야 할 시간입니다...



 

엘레 부나 나가이 누클렌, 엘레 부나 이졸렌 하구다투, 후르마티 하구다투,

완 함투 누라 도우, 보카이 마르그 누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