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茶를 마시며
언젠가
그대
기억할까
고운 옷 떨쳐 입고
그대 향해 환하게
웃음 짓고 있는
우리 삶의 정점인
오늘
이 순간
이 가없는
醉氣
가끔 끝 모르게
청명한 겨울 하늘이
절실히 그리워질 때면
매화 몇 송이를
茶로 우려 본다
정갈한 물을 준비하고
흰 면수건을 준비하고
뽀드득 소리 나도록
미리 깨끗이 닦아 말려 놓은
다기와 다구들을
가지런히 차려 놓고
고른 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茶를 우린다는 것은
게다가
花茶를 우린다는 것은
꽃 한 송이의
지극히 아름다웠던
한 순간을 되살리는
경건한 일
충분히 익은 물을
막 부으려다가 갑자기
손을 멈춘다
잠든 꽃잎을
호들갑스레 깨우는 건
꽃에 대한 배려가 아니리라
꽃들이 행여 데일까
안쓰런 마음에
다시 물을 알맞게 식혀
조심스럽게
마른 꽃잎 위에 붓는다
유리 다해 안에서
습기를 흡수하고
서서히 되살아 나는 꽃들
만개의 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혼을 앗아갈 듯 아름답구나
가늘고 섬세한 꽃술
연녹의 꽃받침
투명한 흰빛과
여린 붉은 기를 띤
꽃잎들
그 어떤 인위의 조화가
이렇게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이렇게 우아한 여백을
이렇게 조촐한 여운을
마음에 가져다 줄 수 있으리
공기의 결을 따라
가볍게 되살아나던 香을
언뜻 느끼던 순간
너무나도 추웠던 지난 겨울
공기도 얼고 바람도 얼고
그래서 피긴 했지만
아마도 채 확산되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 붙었을
그윽한 香
따스한 물 속에 다시 녹아
천천히 몸을 풀고
기화되고 있는 향
기화된 향은
피어있던 계절과 공간을 뛰어 넘어
지금 이 계절
여기
이 혼자만의 찻자리에서
다시 살아나 번져온다
꽃향에서
겨울의 서늘한 냄새가
함께 묻어난다
화선지 위로 먹빛이 번져가듯
물 속에서 파란 잉크가 퍼져가듯
마음 속에서 겨울을 향한
그리움도 함께 피어난다
누군가 너무나 그리워지면
하던 일 모두 멈추고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절박하고 가슴 두근거리는 마음을
호흡 속에 가만히 잠재우는 것처럼
눈을 감고 겨울이 그리운 이유를
생각해 보라
차디 차게 맺히는 게 없으니
누군가를 미워한다든지 하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미워하며 사느니
뭐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는 게 절대 행복이 아닐까
물을 부으면 꽃으로 되살아나
한창이던 시절의 취기를
고스란히 발산하는 그 아름다운
겨울의 혼
탁하디 탁한 세월과
세간에 물들지 않도록
언제나 맑고 향기롭게
내면의 중심을 잡아주는
겨울의 정령, 그리움의 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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