率土山房/愚石의,,,,山房 이야기

우전차 한 잔 우려 놓고

우석푸른바다 2010. 12. 14. 16:50

요즘은 늦은 밤, 음악을 들으며 꼭 차를 한 잔을 우려 마시게 됩니다.
그 차 한 잔의 시간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편안함 마음일 수 있고,
아님 남은 하루의 일을 정리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주로 녹차를 즐겨 마시는데, 눈으로 보는 청초한 빛깔의 즐거움과
코로 느끼는 그 향기와 입에서 오래동안 맴도는 청아한 맛 때문입니다.
차를 가까이 하게 된 것은 결코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어느 차행사에 참석한 후부터입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멋으로, 맛을 들이기 시작해서
이젠 가까운 나들이에도 꼭 1인 다기를 챙길 정도입니다.
보온 병에 끓인 물을 담고, 다기와 함께 가방에 넣어 다니죠.
오늘밤도 우전차 한 잔을 우려 마셔봅니다.
아, 깨끗함과 향긋한 내음~~
기분까지 좋아집니다.
처음엔 하얀 다기에 찰랑이는 청아한 옥빛깔의 차를 보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려 마시는 녹차는 물의 온도가 맞지 않은지,
아님 차의 품질이 낮은 등급인지 색깔이 다갈색이었습니다.
그래서 물의 온도를 조끔씩 다르게 우려봤지만
마찬가지로 색깔이 옥빛깔이 안 나왔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마 차의 품질이 나쁜 것이라고~~
그래도 한입 가득 머물고 있으면 향긋하고 구수한 게
입안을 환하고 깨끗하게 해주는데, "바로 이 맛이야!" 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갈색이 진짜 우리 한국 전통차의 빛깔이라고
어느 학승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조금은 의아스러워졌지만 저는 믿기로 했습니다.
차색이 다갈색이든 옥색깔이든 제 입맛에 맞으면 바로 좋은 차라고요.
그러나 이제는 다도정신에 의해서 차를 마셔 볼 생각입니다.
눈으로 색깔을 감상하고~~
코로 향기를 음미한 후~~
혀로써 맛을 봐야겠습니다.
차는 첫 잔은 향기로 마시고~~
둘째 잔은 맛으로 마시며~~
셋째 잔은 약으로 마신다고 했습니다.
차나무는 키가 작고 옆으로 퍼진 것을 귀하게 여긴다고도 했습니다.
봄에 싹이 날 때 일찍 딴 것으로는 '최고의 차'를 만들고
늦게 딴 것으로는 가루차(晩茶)를 말들고
잎이 펴진 후에 딴 것으로는 잎차(展茶)를 만든다고 합니다.
곡우(穀雨) 전후를 가려서 우전차, 우후차로 구별하며
대개는 빛깔이 선명하면서 아름답고, 싹이 가늘고 작은 것을
최고의 차로 삼는다고 합니다.
아무튼 차 한 잔에 이렇게 깊은 뜻이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차 한 잔 마시는데 뭘 그리 따지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냥 편하게 마시면 되지~~
그런데 그것이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알고 그냥 마시는 것과 모르고 마시는 것과는 좀 다르다는 것이지요.
그냥 평상시 아무 생각없이 마시던 차를 알고보니
조금은 유식해 진 것 같고, 또 가볍게 마실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은근히 부담도 됩니다.
차라리 모르고 마시는 게 나을까요?
그래도 모르고 마시는 것보다야 알고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요즘은 차에 관련된 책에도 자주 눈길이 갑니다.
하루의 바쁘고 피곤한 몸~~
이 한 잔의 차로 잠시 여유도 찾고 건강도 찾고 싶습니다.

 

초의차

곡우초의 맑은 날
누른 싹잎은 아직 피지도 않았는데
빈 큰솥에서 정성스레 덖어내어
밀실에서 알맞게 말린다네.
잣나무 상자에 네모와 둥근차 찍고
죽순껍질로 싸고 잘라서
바깥바람 엄하게 막아서 간수하니
찻잔에는 가득한 향기가 감도네



穀雨初晴日 黃芽葉未開
空당精炒出 密室好乾來
栢斗方圓印 竹皮苞裏裁
嚴藏防外氣 一椀滿香回
 


책을 펴고 오래 앉으니 정신이 작아지고
별안간 터지는 차 생각의 기세를 금하기 어렵네
꽃 핀 우물 표면은 따뜻하고 달아
두레박에 퍼내어 화를 안고 끓는 소리 듣네
한 두 세번째 끓음에 맑은 향기 넘치고
네 댓 여섯 잔에 땀이 조금나네
육우의 다경을 지금 비로소 깨달았고
노동의 차노래 대체를 알겠노라
보림사 작설은감영에 수송되고
화개의 맛좋은 차는 전각의 섬돌에 바쳐지네
함평 무안의 토산차는 남녘에서 뛰어나고
강진 해남의 제작차는 북경에 알려졌다네
마음의 괴로움 일시에 닳아서 없어지고
신비로운 광선의 말고 밝음은 한나절이나 더하네
졸음의 마귀와 싸워 물리치니 눈이 어지럽고
먹은 공기 내려 놓으니 막힌 마음이 서로 통하네
쓴 맛이 멈추기와 덜기에 이로움을 일찌기 경험하고
감기의 독이 풀리니 또한 통달하여 밝아지네
공자님의 사당 참배에는 술을 따르고
부처님 법당에는 정성을 공양한다네
서석의 찻싹과 찻잎은 어진 시험 덕분이고
백양사의 작설차 신령스러움 다한 때문일세
덕용의 용단차는 교제를 끊어 사이가 떨어지고
월출산에서 나오는 차는 가벼이 좇아 사이가 멀도다
초의선사의 옛집은 이미 언덕이 되고
이봉이 살던 산엔 즐기던 다관이 가지런하네
무위실의 법도처럼 조화되고
옛 예암의 장막으로 평온하게 간직하였다네
남파는 좋고 나쁨 말하지 않는 버릇이고
많고 적음 사양치 않음이 영호의 본성이라네
자세히 풍속을 보니 차 즐기는 사람 많은데
당·송의 성현들과 못하지 않노라
선가의 유풍은 조주스님의 말씀이고
참맛을 보고 얻음은 제산이 앞섰네
만일암의 공사도 끝나 달밤을 즐기며
풀무를 불어 곁군을 거느리고 달여서 차를 바치네
정사와 언질은 납일에 장가들고
성인의 가르침과 샘물 긷기를 큰 연꽃이라 부르네
만병과 천가지 시름 모두 없애 버려
제멋대로 소요하기가 부처님과 같네
물 끓이기를 헤아려 계보에 적고 칭송하는 말을 논하거니
별 하나가 끝없는 하늘에 불타며 흘러 가는데
어찌하여 기습과 정공의 훌륭한 책을 나에게 전하는가


* 범해선사는 해남의 대흥사에서 초의선사와 같이 수도한 선사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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