率土山房/설록의 노래

차를 마시며

우석푸른바다 2014. 8. 5. 07:31

차를 마시며

 

 

숙우에 걸름망 걸고

다관의 찻물을 따른다

 

마치 오랜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인고의 시간도

그 끝에 이르렀다는 듯

 

형형색색의 향기를 담은 찻물이

숙우 바닥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 신기루 처럼

남녘의 새벽 안개를 만든다

 

연한 연두빛 찻물에서

어느 싱그러운 바닷가

푸른 녹차밭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내곁에 그 누군가가 마주보고

그 선한 웃음을 건넨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정결한 무아의 손길로 우려낸

향기로운 차 한잔을

기쁜 마음으로 건넬 것이다

 

쓸쓸한 그리움이 닿을수 없는

어떤 그리운 이가 머무는

우주 먼곳에

아득히 불을 밝히고 싶다

 

한잔 한잔 우려낸 찻잎에

더 이상 푸른 가슴을 보여줄

향기조차 사그라 들어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퇴수기 안엔 먹먹한 표정의

해탈한 찻잎만이 침묵을 하고 잇다

 

나는 간절히 원한다

찻잔처럼 무엇이든지

아름답게 담을 수 있기를

 

다관처럼 미움과 증오

슬픔 그 무엇이든지 담아

향기롭게 푸른 가슴 열어 헤치고

맑게 따뜻이 우려낼 수 있기를

 

급히 앞만 보고 달려 가끔씩

내 삶에 쉼표를 찍고 싶을떄

저 걸름망 처럼 무심히 쉴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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