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시며
숙우에 걸름망 걸고
다관의 찻물을 따른다
마치 오랜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인고의 시간도
그 끝에 이르렀다는 듯
형형색색의 향기를 담은 찻물이
숙우 바닥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 신기루 처럼
남녘의 새벽 안개를 만든다
연한 연두빛 찻물에서
어느 싱그러운 바닷가
푸른 녹차밭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내곁에 그 누군가가 마주보고
그 선한 웃음을 건넨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정결한 무아의 손길로 우려낸
향기로운 차 한잔을
기쁜 마음으로 건넬 것이다
쓸쓸한 그리움이 닿을수 없는
어떤 그리운 이가 머무는
우주 먼곳에
아득히 불을 밝히고 싶다
한잔 한잔 우려낸 찻잎에
더 이상 푸른 가슴을 보여줄
향기조차 사그라 들어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퇴수기 안엔 먹먹한 표정의
해탈한 찻잎만이 침묵을 하고 잇다
나는 간절히 원한다
찻잔처럼 무엇이든지
아름답게 담을 수 있기를
다관처럼 미움과 증오
슬픔 그 무엇이든지 담아
향기롭게 푸른 가슴 열어 헤치고
맑게 따뜻이 우려낼 수 있기를
급히 앞만 보고 달려 가끔씩
내 삶에 쉼표를 찍고 싶을떄
저 걸름망 처럼 무심히 쉴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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