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이 시집을 읽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에게 나의 모든 책을 선물하겠다. (우석)
개 같은 가을이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 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최승자-개 같은 가을이>
개 같고 매독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고 했다.
시인의 통찰과 감각은 옳다. 가을은 그렇게 쳐들어 오는 계절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는지. 격렬하게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이 시와 또 만나게 되었다.
더이상 늙지도 죽지도 마시고, 영원히 시를 써 주십시오.
그 옛날이 애틋한 건 당시 나를 관통했던 문화들이 있었던 까닭이다.
이성복, 황지우 시인과 더불어 매니악한 독자들과 동료 시인들이 극찬하며
애정을 쏟았던 최승자. 그러나 그녀는 문단과 각종 매체에 자신을 잘 노출하지 않아 시적 역량에 비해 상을 많이 수상하지도
못했고, 시심을 가진 문청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못한 이름이다.
시인은 환청과 환각 증상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는 날도 있었고 여관이나 고시원에서 살기도 했다.
그녀의 삶은 지독하게 아름답고 고통스러우며 쓸쓸하고도 어두운 시와 닮아 있는 것이었다.
늘 죽음의 냄새가 따라붙었다.
듣기로는 기초생활수급자로 겨우 밥을 먹고 지내기도 했다는데 천재적인
이 시인에게 사는 일은 왜 그리도 아픈 것일까. 담배를 피우고 쓰디쓴 소주를 삼키며 시를 써내는
최승자 시인에게 정신분열은 불가피한 운명 같은 것이었을까.
근황에 관한 사진들을 통해 깡마른 환자의 모습을 한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또다시 울컥했다.
시어는 깊은 병을 앓고 있고, 시인 스스로 분신하며 내 지르는 비명같이 읽혔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최승자의 시 '삼십 세' 중에서>
막막하고 불안했던 나는 그 시를 다시 꺼내어 들어 끌어안고 울었다.
다 그런 세월 지나가며 살아가. 슬퍼하지 마.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당연히 통과해야만 해. 괴롭지만 어쩌겠니.
우리 사는 일이 그러한 것을. 최승자 시인이 내게 소주를 건네며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위안을 느꼈다. .
당시의 번뇌를 알아채는 이는 최승자뿐이었다.
누가 그녀의 작품을 두고 이러한 평을 했다. 가장 적확한 표현이어서 이 문장을 뛰어넘는 찬사는 없을 것 같다.
최승자의 언어는 격렬한 액체의 언어이다. 그녀는 시에서 오줌 싸고 똥 누고 생리혈을 흘린 최초의 여성이었다.
일찌기 나는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나 또한 그 영원한 루머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백 번을 생각하며 돌아눕는 밤이 있다. /
시가 곧 삶 자체이자 그래서 치열하게 자신의 숙명에 뒹굴며 고독과 죽음에서 피 냄새를 맡게 하는
시인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승자만이 감지하는 세상에 나는 눈을 감고 싶다. 그녀는 '시'라는 세계에 순교하는 사람일 것이다.
서점에 가시거든 최승자 시인을 만나 보십시오. 그리고 그 날은 가슴이 저미어 와 눈물은 떨구어도 과음하시면 안 됩니다. 내내 속이 쓰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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