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을 들고
읽던 책 덮어두고
다로(茶爐)에 물 끓입니다
지그시 눈 감으면
더 선명한 내 작은 산방
설록향 그리움 같은
세월 한 폭 끓입니다
마시던 찻잔 잠시 놓고
안경을 닦습니다
뿌옇게 앞을 가린
온기의 그 흔적처럼
새들의 노래가
찻잔에 와 젖습니다
닦아낸 안경 같이
이승도 참 맑습니다
차면 또 비워 내는
저 달 같은 찻잔을 들고
눈뜨는 땅 속 씨앗 같이
마음 밭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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