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고전인 육우의 다경에..
"울분을 삭이는 데는 술을 마시고, 혼미를 씻는데는 차를 마신다"고 지적 하였듯이
술이 시끄러운 집합을 위해 발명된 것이라면, 차는 한적한 모임을 위해 마련 된 것이다.
술은 아무데서나 아무하고도 마실 수 있지만 차는 그럴 수 없다.
무엇보다도 마시는 그 분위기와 이웃을 가리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
임어당은 그의 다론(茶論)에서 이렇게 말한다.
"차의 성질 중에는 우리들을 한가하고 고요한 인생의 명상에로 이끄는 힘이 있다."
어린애들이 울고 있는 곳에서 차를 마신다거나
시시덕 거리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이나 정치를 논하는 무리들과
더불어 차를 마신다는 것은 비오는 날이나 흐린 날에 차를 마시는 것과 다를게 없다
차의 성질 자체가 맑고 향기로운 것이므로
비오거나 흐린 날에는 제 맛이 나지 않을 뿐더러 그 분위기가 적합하지 않다.
차는 고도로 승화된 미의식의 세계다.
그러므로 먼저 그 분위기와 조건이 가려져야 한다.
흔히 다도의 정신으로 화경청적[和敬淸寂]을 들고 있다.
화평하고 예절있고 맑고 고요한 분위기여야 한다는 것.
따라서 차맛을 진짜로 알게 되면 [화경청적]의 덕이
곧 그 사람의 인품으로 까지 배이게 될 것이다.
차를 즐겨 드는 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바지만
함께 마시는 사람의 수가 적어야 차맛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객(客)이 많으면 시끄러워지고 시끄러우면 차의 은은한 매력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초의선사도 그의 동다송[東茶頌]에서 밝히고 있다.
"차를 마시는 법은 객이 많으면 수선스럽고 수선스러우면 아늑한 정취가 없어진다.
홀로 마시면 신묘하고, 둘이서 마시면 좋고, 서넛이 마시면 유쾌하고,
대여섯이 마시면 덤덤하고, 칠팔인이 마시면 나눠먹이와 같다"
나는 남에게 무얼 주고 나서 후회한 적이 별로 없는데(그렇게 기억이 되는데),
재작년 늦가을 어느날 친지들에 섞여 내 암자를 찾아온 한떼의 나그네들에게
다로에 숯불까지 피워 차를 달여 주고 나서 며칠을 두고 짠하게 생각한 일이 있다.
한두 사람을 제하고는 차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례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눠먹기와 같다는 표현으로는 미진할 만큼 주고 나서도 못내 짠한 생각이었다.
그들은 차를 마시기 전에 코로 씽씽 냄새를 맡는가 하면, 입맛을 쩝쩝 다시지 않나,
꿀꺽꿀꺽 소리내어 마시지 않나, 후후 불며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그날 찾아온 나그네들에게 내놓을 거라고는 차밖에 없었으므로 차를 달인 것이지만,
화경청적이 없는 그런 자리에 차를 내놓은 것부터가 주인의 불찰임을 못내 후회했다.
일본인들처럼 차보다도 오히려 그 격식을 위한 것 같은
번거럽고 까다로운 범절(凡節)을 차릴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차를 마시는 데 있어서 최소한 기본적인 예절쯤은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홀로 거처하기 때문에 혼자서 차를 마실 때가 많다.
혼자서 드는 차를 신묘하다고 했지만, 그 심경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길이 없다.
선(禪)의 삼매(三昧)에서 느낄 수 있는 선열(禪悅), 바로 그것에나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육우(陸羽)는 다경에서 말한다.
"깊은 밤 산중의 한간 집에 앉아 샘물로 차를 달인다.
불이 물을 데우기 시작하면 다로[茶爐]에서 솔바람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찻잔에 차를 따른다.
부드럽게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둘레의 어둠을 비추고 있다
이런 때의 기쁨은 도저히 속인들과 나눌 수 없다"
다음 글은 추사(秋史)가 즐겨 읊었던 다시(茶詩)다. 서투른 솜씨로 옮기면 이렇다.
靜坐處茶半香初(정좌처차반향초) 妙用時水流花開(묘용시수류화개)
말없이 앉아 차를 드니 반쯤 마셔도 향기는 처음 그대로
일어서 움직이면 물이 흐르고 꽃이 피더라
지난봄 볼일이 생겨 오랜만에 서울에 갔었다.
서울이란 도시가 원래 그런 곳이긴 하지만 마음이 영 붙질 않았다.
노상 엉거주춤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차를 마시지 않았더니
속이 컬컬하고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때 마침 한 스님한테서 차를 조금 얻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마땅한 다구(茶具)가 없어 차를 마실 수 없었다.
커피 포트 같은 데 물은 끓인다 할지라도
알루미늄 주전자나 커피잔 같은 데다 차를 우리고 따라 먹을 수 없다.
이것은 결코 사치스런 생각에서가 아니다.
차의 은은한 향취와 맑은 빛깔과 그 미묘한 맛을 알려면 다구가 갖추어져야 한다.
최소한 도자기로 된 차관과 잔만은 갖추어야 차를 제대로 우려서 마실 수가 있다.
사무실 스님의 배려로 인사동에 들러
요즘 이천 주변에서 구워낸 차관과 찻잔을 한벌 구하긴 했지만,
정이 가지 않는 그릇들이라 끝내 차맛을 낼 수가 없었다.
다구는 길이 들어야 한다.
다인들이 다구를 중히 여기는 것은 멋을 부리거나 도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차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서인 것이다.
값이 비싸다고 해서 좋은 그릇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값이 헐하더라도 다실의 격에 어울리면 차맛을 낼 수 있다.
찻잔은 될수록 흰것이 좋다. 빛깔을 함께 마실 수 있기 때문에.
끓인 물을 부어 차를 우리는 차관은 차를 따를 때 물이 똑똑 끊어져야 하는데,
그 처리가 잘 안되어 차를 바닥에 흘리게 되면 차 맛은 반감되고 만다.
다음으로는 질이 좋은 물이 문제다.
수도물은 소독약 냄새 때문에 차맛을 제대로 내기는 어렵다.
더구나 요즘처럼 오염된 대도시의 수도물로는
차가 지니고 있는 그 섬세한 향기와 맛을 알기 어렵다.
산중의 샘물이 그중 좋은 물인 줄은 알지만,
도시에서는 구할수가 없으니 수도물을 가정에서 여과하여 쓸 수밖에 없다.
다실의 분위기와 다구와 물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정성들여 달이는(우리는) 법을 모르면 또한 차맛을 제대로 낼 수 없다.
차를 너무 우리면 그 맛이 쓰고 덜 우리면 싱겁다.
알맞게 우리어 그 향기와 맛과 빛을 갖춰 내어야 온전한 차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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