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설차와 중국차
그런데 나는 커피도 굉장히 좋아하고 우리 녹차도 좋아하며 보이차를
비롯한 중국차도 좋아한다. 시간과 상황에 따라 특히 더 좋은 차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야에 헬쓰클럽에서 땀을 흘리고 갈증을 느낄 때면
집으로 오는 길에서부터 보이차가 그리워진다. 녹차보다는 훨씬
많이 마실 수 있고, 많이 마셔도 별로 거북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햇살이 청명한 휴일 낮에는 우리 녹차 춘설차가 어울린다.
회사에서 일하며 잠시 쉴 때 마시기에는 물을 식히지 않아도
될뿐더러 잎이 커서 뒤처리가 간편한 우롱차가 제격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차의 종류가 참으로 많다. 녹차뿐만이 아니라
원두커피는 물론 각종 홍차에서 허브차, 아프리카가 원산인
루이보스차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이 중 보이차를 제외하고 가장 즐겨 마시는 차는 우리 차 하나와
중국차 넷 모두 5가지 정도다.
춘설차-광주 무등산이 낳은 명품차
녹차를 어지간히 아는 사람이라면 춘설차가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명차 중의 하나라는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춘설차의 고향은 광주 무등산인데, 내가 마시는 춘설은
남종문인화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 선생이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가꾸기 시작한 이래, 그의 자제분이 대를
이어 생산하고 있는 고급 수제차이다. 찻잎이 얼마나 여리고
작은지 어지간한 녹차의 부스러기만하다. 세작 중의 세작이다.
70℃ 정도의 따뜻한 물에 우려내면 맑은 연두 빛으로
우러나는데, 그윽한 향기와 상쾌하면서도 은은한 맛이
정말 일품이다. 단언하건대 어지간한 중국이나 대만 명차는
명함을 내밀지 못할 만큼 훌륭한 차이다.
나는 이 귀한 차를 두 번 다 유명 신문사 광고 책임자를 두루
거친 마당발이자 둘도 없이 친한 친구인 이병묵이로부터 선물
받았다. 그런데 녀석은 이 귀한 차를 어디서 구했을까.
용정차-중국차를 대표하는 녹차의 황제
흔히 중국의 10대 명차를 꼽는데, 사실 그 10가지의 대표적인
차는 꼽는 사람마다 조금씩 목록이 달라진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건 절대 빠지지 않을뿐더러 맨 앞에 오는 차가 바로
용정차이다. 항주의 서호 근처의 차밭에서 주로 재배된다 해서
‘서호 용정’이라고 부른다.
나에게 있어 용정차는 중국차의 세계를 처음 알게 해 준
의미있는 차이다. 재작년 중국 상해 출장길에 항주의 한 차밭에서
직접 시음을 해 보고 구입했는데 그 때의 놀라움을 잊을 수 없다.
녹차로서는 다소 높은 온도인 80도 정도에서 우리는데도 전혀
떫은맛이 없고 깊은 향과 잔잔한 맛이 오래도록 입안에 맴돌았다.
그 때 사온 차가 금방 떨어져 얼마 후 중국엘 다녀온다는 후배
녀석에게 한 통 사올 것을 부탁했는데, 녀석이 북경에서 사온
용정차는 모양만 흡사했을 뿐 맛은 완전히 꽝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용정차도 품질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다음 부터는 꼭 항주에 간다는 사람에게만 차 부탁을 했다.
지금 마시는 용정차는 몇 달 전 <약국신문>의 편집국장 겸
이사를 지낸 친구 송준산이가 항주의 바로 그곳에서 구입해
온 차이다. 맛과 품질이 처음의 것과 똑같이 훌륭하다.
안길백차-은은한 단 맛, 상쾌한 신세대 명차
중국차는 발효 정도에 따라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
이런 식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안길백차는 이름과는 달리 백차가
아니라 녹차이다.
문헌에 따르면 특정 환경에서 자라면서 변이된 차나무의 일종인
‘백차나무’의 찻잎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안길백차의 고향은
안길현 천황평진 대계촌의 해발 800미터 지점인 계가장 지역이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백년 이상 된 백차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다고 한다.
요즘 출시되는 안길백차는 이 백차나무들을 무성번식 시킨 차나무로
부터 채취된 것이라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차가 1986년 이후
여러 차 품평대회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으면서 명차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재배의 역사는 길지만, 명차의 반열에 오른 시기는 최근이므로
‘신세대 명차’라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성분분석 결과에 따르면 안길 백차는 다른 녹차에 비해 폴리페놀
함량은 절반 정도로 낮은 대신 아미노산의 함량이 두배 이상
높다고 한다. 백차의 뒷맛이 달콤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마시고 있는 백차는 몇해 전 아들 녀석이 우연한 기회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우리나라의 저명한 차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때만 해도 중국차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어쨌든 굉장히 맛있는 차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마셨다.
백차의 명성을 까맣게 모른 채 아끼지도 않고 너무 열심히 마신
것이다. 그 결과 이제는 정말 한 줌 밖에 남지 않았다. 다 떨어지면
어디서 이런 진품을 구할꼬.
안계 철관음-깊고 부드러운 맛, 우롱차의 제왕
각종 우롱차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우롱차이다. 우롱차는
한자로는 오룡차(烏龍茶)라고 쓰고 다른 말로는 공부차(功夫茶)
라고도 한다.
차의 분류에 따르면 절반 정도가 발효된 반발효차를 말하는
것으로 중국에서는 반발효차를 청차(靑茶)라고도 부른다.
오룡차는 크게 민남오룡, 민북오룡, 대만오룡 등으로 나뉜다.
여기서 ‘민’은 복건성을 지칭하는 말로 복건성을 중심으로 그
남쪽에서 생산된 오룡과 북쪽에서 생산된 오룡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중 철관음은 복건성의 남쪽에 있는 안계 지방에서 주로 나는
오룡차로 민남오룡을 대표하는 차다. 민남오룡에는 황금계,
모해, 본산 등의 명차가 있지만, 단연 첫손에 꼽히는
명차중의 명차는 철관음이다. 지역명을 앞에 붙여 흔히 ‘안계
철관음’으로 통한다.
이 안계 철관음은 작년 겨울 북경 여행 때 북경의 차 전문점에서
꼼꼼히 살핀 끝에 고른 것인데, 돌아와 마셔보니 그야말로 차
맛이 천하일품이었다.
은은한 차향에 살짝 단맛이 감도는 깊은 맛. 나는 이 차를 주로
늦은 밤, 조용한 시간에 홀로 마신다. 아껴 마셨는데도 거의 다
없어져버려 참으로 걱정이다.
대홍포-바위산의 전설, 오룡차의 茶聖
철관음이 민남오룡을 대표하는 이름이라면 대홍포(大紅袍)는
민북오룡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민북오룡 중에서 가장 유명한
차들이 무이산 바위틈에서 자란다는 ‘무이암차’이다.
그리고 이 무이암차 중에서도 특별히 뛰어난 차 넷을 무이암차의
사대명총(四大明叢)이라고 부른다. 대홍포를 비롯, ‘철나한’,
‘백계관’, ‘수금귀’가 바로 그것이다. 대홍포는 이 사대명총
중에서도 첫손가락을 꼽는 명차 중의 명차이다.
철관음이 그러하듯 본래 대홍포의 모수(母樹) 또한 몇그루 되지
않는 보호수에 가까워 오리지널 대홍포를 마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나오고 있는 대홍포는 1980년도 이후 대홍포의 모수를 무성
번식시켜 얻은 차나무에서 대량 생산한 것이다.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대홍포는 중국에 친구가 살고 있다는
회사 직원에게 부탁해 그리 비싸지 않은 값에 구입한 것이다.
그 친구의 말로는 이보다 몇 배나 비싼 대홍포가 있다는 것으로
보아 절대 상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상품 대홍포를
마셔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맛을 비교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다만
선입견 없이 맛만을 말한다면 현재 마시고 있는 철관음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용정차의 경우처럼 상품을 먼저 마셔보았더라면
아마 이 대홍포는 맛이 꽝이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차잎이 엄청 크고 조금만 넣어도 많이 우러나는데다 몇
번 우려도 그다지 맛이 변하지 않아 현재는 회사에 가져다 놓고
매일 마시고 있는 중이다. 그나저나 상품 대홍포는 언제나 마셔볼 수 있을까.
우석
'茶 道 > 茶道,,,중국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침 백호 (?? 白毫) (0) | 2011.03.06 |
---|---|
발효차의 첫 잔을 버리는 이유 (0) | 2011.03.02 |
중국 각 산지에 따른 차(茶)종류 (0) | 2011.02.23 |
용정차, 벽라, 황산모봉차 이야기 (0) | 2011.02.19 |
신앙의 차 “철관음” (0) | 2010.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