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道/茶道,,,중국차 이야기

용정차, 벽라, 황산모봉차 이야기

우석푸른바다 2011. 2. 19. 04:48

 

 

 

용정차는 중국 녹차의 대명사이다.

 ‘용정’은 차의 명칭이기도 하고 지역 명칭이기도 하며, 그 지역 우물의 명칭이기도 하다. 중국 절강성 항주의 서호 남쪽에 용정촌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 용정이란 우물이 있고 그 우물로 인해 세워진 용정사라는 절에서 재배한 차를 용정차라 이름한 것이 시작이다. 용정차는 꾹 눌러 놓은 듯한 찻잎의 모양과 신선한 난꽃 향기가 은은하게 나는 것이 특징이다.

 

 용정차에 얽힌 전설 

 항주 서호는 많은 산속에 포위되어 있는데 그 속에 사봉산이 있었는데, 청나라 건륭제가 황위에 있던 시절, 사봉산에는 수풀이 무성하고 시내물이 흐르고 푸르른 차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이 시절은 매우 태평한 시절이었는데, 건륭제는 여행을 좋아해서 늘 강남으로 내려와 세상살이를 돌아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건륭제가 서호로 찾아와 서호, 삼담인월, 내봉탑 등 아름다운 경관을 보고 평소에 늘 즐겨 마시는 용정차를 직접 보려고 사봉산을 찾았다.

황제가 사봉산의 호공묘에 이르자 스님이 가장 좋은 서호 용정차를 대접하였는데, 정교한 찻잔 안에서 푸르른 찻잎이 살아 숨쉬는 듯 떠 다니고 차 향기가 코를 찔렀다. 건륭제가 기본 좋게 차를 마시고 호공묘를 나서니 문 앞에 특히 푸르른 차 잎을 가진 차나무 18그루가 있었다. 이 차나무에서 건륭제가 직접 차를 따고 있는데 황궁에서 황태후가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건륭제는 급히 황궁으로 돌아갔다. 건륭제가 황태후에게 가서 병의 상태를 살피는데, 황태후가 황제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맡고 어디서 나는 향기인가 궁금해 했다. 그러다가 황제의 소매 속에서 찻잎 몇 개가 떨어졌고, 그 찻잎을 주운 황태후가 그 향이 좋아 몸이 개운해졌다고 칭찬을 하였다. 이에 황제가 급히 영을 내려 용정차를 황태후에게 올리니 황태후의 병이 씻은 듯 가셔졌다고 한다. 이 후, 황제는 영을 내려 서호 사봉산 호공묘 앞의 차나무 18그루를 어차로 칭하고 특별히 인원을 파견하여 관리하게 하였다. 현재도 이 18그루의 차 나무는 차를 생산하고 한편 유구한 역사와 전기적인 색채로 관광객을 끄는 서호의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벽라춘은 중국 10대명차중 하나로 중국 강소성이 주 산지이다.

 벽라춘은 중국 강소성 남동부 태호에 위치한 지역으로, 역대에 걸쳐 행정 중심지로 알려진 곳이다. 벽라춘은 중국 녹차 중 햇차로 4 1일을 전후하여 따는데, 명전차 (明前茶,청명(淸明, 양력 4/5일경) 전에 따는 차)라 부른다. 벽라춘(碧螺春)은 잘고 하얀 털로 싸여 있으며 향기가 높고 맛이 부드러우며 잎이 가늘고 어려 우려낸 빛깔이 벽록색이다. 동정 벽라춘의 산지는 중국에서 유명한 차와 과일나무를 겸작하는 산지이기도 하다. 복숭아, , 자두, 감귤, 석류 등을 재배하는데, 이들의 향기를 빨아들여 벽라춘에는 차에서도 과일 냄새가 싱싱하게 전해진다.

 

벽라춘 전설- 벽라와 아상의 이야기 벽라춘에는 여기에 아름다운 전설이 깃들어 있다. 벽라춘을 풀이하면 푸른 소라의 봄이라는 뜻이다. 머나먼 옛날 서쪽 동정산에 아름답고 근면하고 착한 처녀 벽라가 살고 있었는데 벽라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였는데 청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그의 노래 소리는 달디단 샘물처럼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감싸주었다고 한다 벽라의 노래소리는 물을 사이둔 동쪽 동정산에 사는 총각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아상이라고 하는 이 총각은 몸집이 장대하고 무예가 좋고 정직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를 좋아해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벽라는 호수가에서 그물을 뜨며 노래를 부르고 아상은 호수에서 고기를 낚으며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표시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도 그들의 사랑이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어느해 봄날, 뜻하지 않은 재해가 그들을 찾아왔다. 호수에서 흉악한 용 한 마리가 나타나 광풍폭우를 만들며 벽라를 자신의 태호 부인으로 삼겠다고 한것이다. 아상은 이 용과 싸워 벽라와 마을사람을 구하기로 작심하고 어두운 밤 고기잡이 창을 들고 소리없이 서쪽 동정산에 올라 용이 잠든 기회를 타서 창으로 용의 잔등을 찔렀다. 중상을 입은 용이 아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상과 용은 밤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싸웠고 그날 밤까지 싸웠다. 그 통에 하늘이 어두워오고 산과 호수가 뒤흔들리며 산과 호수에 점점의 피자국을 남겼다. 아상과 용은 칠일낮과 칠일밤을 싸웠는데 용도 죽고 아상도 중상을 입어 혼미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벽라는 아상을 집에 데려다가 밤낮으로 간호하며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중상을 입은 아상의 병세는 날로 더해가고 그것을 보는 벽라의 마음을 칼로 에이는듯 했다. 하지만 아상은 벽라가 자신을 간호하는것을 알고 말은 못해도 눈으로 벽라를 응시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황산모봉(黃山毛峰)은 중국의 10대명차 중에서 특급차로 분류된다. 황산은 중국 안휘성의 유명한 명승지로서 중국 동부쪽에 자리한 최고의 산봉우리다. 또한 황산은 중국의 5대 명산 중 하나로 황산의 샘물로 특급 모봉차를 우려 마시면 찻물이 하룻밤을 지나도 찻잔에 차 얼룩이 남지 않기에 더욱 유명하다. 황산 모봉차는 작고 흰 은빛 털이 마치 여우털이나 밍크를 온 몸에 감고 있는 귀부인을 연상시킨다. 또 높은 향기와 신선하고 부드러운 맛이 자랑이다. 

 

 황산 모봉차에 관한 고서(古書)의 기록 ()나라 허차서(許次書) <<다소(茶疏)>> '천하의 명산에는 필히 영초(靈草)가 나며, 강남지방의 기온이 온화하기에 찻잎을 재배하기에 가장 적합하다.특히 오()지역의 호구(虎丘), 전당(錢塘)의 용정(龍井), 휘주(徽州)의 황산(黃山) 등이 그렇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휘주부지(徽州府誌)>>에 따르면 '황산에는 송()나라 가우(嘉祐)년간부터 차를 생산하였으며 명()나라 융경(隆慶)년간에 비로소 그 명성이 날렸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황산차는 명나라 때부터 이미 명성이 자자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황산모봉(黃山毛峰)차는 청()나라 광서(光緖)년간 사유태다장(謝裕泰茶莊) 주인 사정화(謝靜和)씨가 발명한 것이다. 다농인 그는 1875년 황산의 탕구(湯口), 충천(充川) 등지에 다원를 만들어 황산모봉(黃山毛峰) 재배에 성공한 후 비로소 그 옛 명성을 다시 찾는 계기가 되었다.

 

 


 

'茶 道 > 茶道,,,중국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춘설차와 중국차   (0) 2011.02.28
중국 각 산지에 따른 차(茶)종류   (0) 2011.02.23
신앙의 차 “철관음”   (0) 2010.07.12
보이차의 실체   (0) 2010.07.12
홍인원차  (0) 2010.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