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시는 분이 전화를 하셔서는
“집에서 인스턴트 커피만 마셨었는데 원두로 바꿔보려 해.
그런데 막상 뭘 사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하시더군요.
원두커피라는 것이 별 것 아니지만, 막상 처음 집에서 먹으려고 하면 기구도 다양하고,
그에 따라 맛도 다르다고들 하니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막상 어디서부터 어떻게 권해드려야 할지 좀 난감하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집에서 드시는 커피를 원두커피로 바꾸시려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방법과 단계에 대해 좀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집에서 원두커피를 먹는 4단계’ 정도 되겠습니다.
일단 원두커피를 만들기 위한 도구를 쉽게 비유하자면 붓글씨 재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붓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먹, 벼루, 물, 붓, 종이를 사야합니다.
일단 각 재료의 질에 따라 가격차이가 많이 나는 관계로, 초보자의 경우 살 때부터 좀 망설여집니다.
“이왕 사는 거 좋은 걸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야 쓰다가 그만둘 수도 있으니
처음엔 싼 걸로 사서 연습하는 게 좋지 않을까?”하고 고민하게 되죠.
아마도 가장 실속 있는 방법은, 처음엔 저렴하고 일반적인 재료로 연습을 하면서
붓과 종이와 먹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한편,
다양한 글씨를 쓰면서 내용에 맞는 글씨체들을 알아가는 것이 좋은 수순일 것입니다.
커피도 마찬가지. 가장 싸고 간편한 추출 기구로 각종 원두를 맛보고,
서서히 입맛에 맞는 커피를 찾으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밖에서 사먹던 커피를 집에서 비슷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정도를 목표로 말이죠.
원두커피의 맛은 원두의 종류, 로스팅(볶음) 정도, 원두의 분쇄정도(그라인딩), 추출방법,
다른 재료와의 혼합방법에 따라 달라집니다.
궁극의 커피를 위해서는 각 단계에서 적합한 선택과 관리를 해주어야겠습니다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커피를 마실 경우에는 생두 자체나 로스팅까지 관리할 일은 없죠.
고로 집에서 마시는 커피의 가장 큰 선택은 추출방법과 그에 맞는 분쇄가 됩니다.
처음에 가장 고민스러운 것이 바로 어떤 추출기구를 살 것인가 인데요,
경험으로 볼 때 쉽고 싸고 간편한 기구로 시작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커피를 뽑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아주 크게 나누면,
흐리게 우려내는 드립방식과 높은 기압을 이용해서 진하게 뽑는 에스프레소 방식이 있습니다.
드립방식은 각종 원두커피의 맛을 음미하기에 적합하고,
에스프레소 방식은 진한 맛과 더불어 우유를 섞은 여러 가지 커피를 만들기에 적합합니다.
에스프레소는 일단 추출기구 값이 비싸고, 추출기술과 우유와의 혼합 기술이 필요하므로
초보자에게는 드립방식이 여러모로 용이합니다.
1단계.
커피메이커 + 여과지(드립필터) + 원두커피 + 분쇄기(그라인더)
커피메이커의 장점은 쉽게 일정 수준 이상의 커피를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커피메이커는 자동으로 드립커피를 만드는 기계입니다.
사실 에스프레소 커피에 뜨거운 물을 섞은 아메리카노 커피나
어설픈 사람이 내린 드립커피 보다 커피메이커로 내린 커피 맛이 낫습니다.
드립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커피메이커보다 좋은 맛을 내는 드립실력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거든요.
다시 말해 커피메이커 커피가 그렇게 맛없는 커피가 아니라는 말씀.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이라면 번거롭고 어려운 추출을 시도하시지 말고,
커피메이커로 쉽게 커피를 내려서 드시길 권합니다. 커피메이커를 이용해
다양한 정도로 로스팅 된, 다양한 종류의 원두를 맛보시면서 커피의 맛도 파악하고,
입에 맞는 커피도 찾아보시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다음은 원두커피를 분쇄를 해야 합니다.
원두커피는 분쇄하지 않은 경우 한 달에서 두 달, 진공 포장시는 1년까지가 유통기한입니다.
분쇄한 이후에는 그 즉시부터 산폐하기 시작하므로 가급적 그때그때 갈아드시고,
진공용기에 보관할 경우 늦어도 5일 안에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분쇄기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믹서에 갈 경우 원두가 바숴지는 것이 아니고 절단되기 때문에
물과 닿는 면적이 줄어들어 맛있는 성분의 추출이 덜 됩니다.
하지만 처음 드시는 분들이라면 일단 분쇄기를 따로 사시지 마시고 집에 있는 믹서기로 갈아드시길 권합니다. 커피 맛에 예민하지 않은 상태에서 먹을 때마다 힘들게 분쇄를 하다보면
오히려 다시 편한 인스턴트로 돌아가게 되기 쉽습니다.
만일 커피를 갈 때 퍼지는 강한 커피향을 특별히 좋아하시거나, 더 좋은 커피 맛을 원하신다면
분쇄기를 구입해야겠죠? 장기적으로 볼 때 다양한 추출 방법에 따라 분쇄도를 달리 해줘야 되니까
이왕 사실 거면 3,4만원 대 이상의 견고한 것을 사시길 권합니다.
그래야 갈 때 힘도 덜 들고, 오래 쓸 수 있거든요.
여과지는 100장에 2000원에서 4000원대까지 있는데요, 커피메이커라면 맛은 다 비슷비슷 합니다.
가장자리의 눌러 붙인 자리(접착선)을 접은 다음 벌려서 넣어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분쇄한 원두커피 두 스푼 정도 넣고 스위치를 켭니다. 그리고 3분 정도 기다리시면...
집에서 원두커피를 드실 수 있겠습니다.
저렴한 수준에서 커피메이커, 여과지, 원두커피, 그라인더를 사시면 5만원에서 10만원이
인스턴트에서 원두로 갈아타시는데 필요한 비용입니다.
참고로 여행기중독자는 3만원짜리 커피메이커 15년째 쓰고 있습니다.
원두의 경우, 1kg단위로 사시는 것이 싸기는 합니다만, 처음엔 좀 비싸더라도
소량의 커피를 사서 여러 가지를 드셔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원두커피를 마시다보면 각각의 커피 맛을 직접 느끼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이기 때문인데요,
커피를 많이 드시는 분은 500g, 하루 한 두잔 드시는 분이라면 250g 정도 사시면 한 달가량 드실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블랙퍼스트 블랜딩과 에스프레소 블랜딩을,
그 다음에는 단종커피 중 가장 무난하고 가장 맛있는 커피인 콜롬비아, 케냐가 좋겠습니다.
2단계.
드리퍼 + 전기주전자 + 여과지 + 원두커피 + 분쇄기
드리퍼는 일종의 원두커피전용 깔대기입니다.
깔대기에 여과지를 넣고 그 위에 주전자로 끓인 물을 직접 부어 우려내는 방식입니다.
가장 저렴하게 커피를 시작하실 수 있는 방식으로,
5000원, 1만원 대 내열 플라스틱 드리퍼를 쓰셔도 무방합니다.
건강에 특별히 예민한 분이나 디자인을 중시하는 분이라면 도자기나 스테인레스, 동... 등
다양한 재질의 비싼 드리퍼도 있습니다.
드립커피는 내리는 사람의 기술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처음 한 달 동안은 실패를 각오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드립을 할 때는 분쇄기(그라인더)가 필수장비가 됩니다.
원두를 좀 굵게 갈아줘야 하는데, 전기믹서로는 분쇄를 일정하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또 단시간에 잘 우러나지도 않고요.
분쇄도와 추출방법의 상관관계는 간단합니다.
뜨거운 물과 닿는 시간이 길수록 굵게 갈고, 단시간에 추출할수록 곱게 갈아줍니다.
고로 드립할 때는 굵게, 에스프레소 추출 시에는 가늘게 갈아줍니다.
분쇄도는 생각보다 커피 맛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커피를 뜨거운 물에 너무 오래 불리면 우러나지 않아야 되는 쓴맛이 우러나고,
너무 짧은 시간 불리면 맛있는 성분이 미처 다 우러나지 않아 싱거워지기 때문이죠.
드립퍼로 내릴 경우 좁쌀 반 만하게 분쇄하면 되겠습니다.
드립을 할 때는 커피를 담은 드립퍼에 뜨거운 물을 붓는 요령이 중요합니다.
처음 약간의 물을 가운데 떨어뜨려 5초간 원두커피를 불린 다음,
물줄기를 최대한 가늘게 해서 가급적 끊기지 않게 끝까지 부어줍니다.
드리퍼에 물이 넘치지 않으려면 밑에서 떨어지는 양과 비례하는 양을 부어주어야겠죠?
추출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물을 부을 때 원을 그리거나 꽃모양으로 붇기도 하고요,
물을 가늘게 따르기 위해 주둥이가 길게 되어 있는 주전자, 즉 드립포트를 씁니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일반 주전자로 최대한 가늘게 부어주시면 되겠습니다.
드립포트라는 놈이 은근히 비싸거든요. 드립은 상대적으로 손이 많이 가서 커피를 덜 자주 먹게 되는데,
그래서 드립포트부터 사놨다가는 찬장에 모셔두기 딱 좋습니다.
장식효과가 있기는 하죠.
잘 내린 드립커피는 여러 원두의 고유의 맛을 최대한 살려 줄 수 있으며,
취향에 따라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중간의 다양한 농도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진한 커피는 향기도 진하지만 쓴맛도 진하므로 설탕을 추가해 드셔야 진한 향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요.
진한 드립커피에 생크림을 얹으면 환상의 비엔나 커피가 됩니다.
3단계.
모카포트 + 원두커피 + 분쇄기
모카포트는 가스렌지에 올려놓고 불을 직접 가열하여 에스프레소를 뽑는 기구입니다.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뽑는 가장 싸고 간편한 방법입니다.
모카포트는 5만원대 내외의 알루미늄으로 된 제품을 가장 많이 쓰긴 합니다만,
알루미늄은 사용 후 즉시 닦지 않을 경우 오래 쓰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뜨거운 모카포트는 식은 다음 청소해 주어야 하는데요, 커피를 마시다보면 씻는 걸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다보면 금방 녹이 슬게 되는데, 알루미늄 녹은 인체에 상당히 유해하므로
결국 오래 쓰지 못하고 포트를 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죠.
알루미늄이 열전도가 빨라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준다고는 합니다만,
처음부터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레스 제품을 사시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비용면에서도 더 실용적입니다. 스테인레스 모카 포트는 15만원 내외 정도 합니다.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카포트를 분해하면 3단으로 분리됩니다.
밑에 물을 붙는 용기, 가운데 커피를 담는 용기, 위에 추출된 커피를 받는 용기, 세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밑에 물을 부어준 다음 커피 담는 용기를 덮고, 그 용기에 커피를 채워줍니다.
원두는 많이 볶은(다크로스팅) 원두를 사서 드립 할 때 보다 곱게 갈아줍니다.
밀가루만큼 곱게는 아니지만 설탕알갱이보다 가늘게 갈아줘야 합니다.
용기에 원두를 채울 때는 가급적 일정한 두께로 가득 채운 다음 평평하게 다져줍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탬핑이라고 하고, 탬핑하는 기구인 탬퍼를 따로 팔기도 합니다만,
집에서 모카포트를 쓸 경우 굳이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커피가 뽑혀 올라오는 용기를 장착합니다.
그리고 불로 가열하면 가열된 압력에 의해 뜨거운 물이 위로 올라가 커피가 추출 됩니다.
약한 불에 놓고 가열이 되기를 기다리면 3-4분 후에 커피가 위의 용기로 뽑혀 올라오기 시작하는데요,
나중에는 밑에 물이 얼마 남지 않아 거품이 올라오는 소리가 납니다.
거품 소리가 잦아들면 다 추출 된 것입니다.
모카포트의 경우, 기본적으로 크래머(에스프레소 위에 생기는 미세한 거품층)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크래머가 생기는 장치가 달려 있어 2,3만원 정도 더 비싼 모카포트도 있습니다.
하지만 에스프레소의 맛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일반적인 카페에서 사용하는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뽑은 것과 비교해 볼 때,
부드러운 맛은 덜하지만 가열된 열에 의해 약간 달여진 맛이 납니다.
그래서 기계로 뽑은 것보다 덜 맛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반면 그 맛이 모카포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이기도 합니다.
우유거품을 섞어 드실 경우, 에스프레소의 맛의 차이는 거의 없어지기도 하고요.
작은 에스프레소 잔에 입맛에 따라 설탕을 한 두 스푼 넣어주고,
얼음물로 입을 가셔주면서 조금씩 마시는 것이 진한 향을 더 오래 즐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치아에 착색도 덜해지죠.
또 얼음물에 레몬즙을 뿌려주면 훨씬 상큼하게 입 안을 가셔주기 때문에 커피 맛도 훨씬 풍부하게 느껴집니다.
에스프레소에 약간의 우유거품을 섞으면 카푸치노, 많은 우유거품을 섞어서 캬라멜 시럽을 뿌리면 마끼야또,
초코시럽을 뿌리면 카페 모카, 아이스크림 한 덩어리에 에스프레소를 부어주면 아포가토가 됩니다.
4단계.
반자동 에스프레소 기계 + 원두커피 + 분쇄기
반자동 에스프레소는 전기를 이용해 집에서 비교적 간편하게 에스프레소를 뽑을 수 있게 만든 기계입니다.
불이 아닌 전기를 이용한다는 점 외에, 추출방법은 모카포트와 동일합니다.
모카포트와 비교할 때 우유 거품기가 달려 있다는 것이 특장점이 되겠습니다.
다만 모델, 가격대에 따라 압력의 세기가 달라 양질의 에스프레소를 추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고로 싸다고 선뜻 샀다가는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중간쯤의 어중간한 에스프레소를
계속 드시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누가 어떻게 추출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역시 기계는 돈값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라면 에스프레소의 맛은 기계의 가격과 성능에 비례하죠.
반자동 에스프레소 기계일 경우 적어도 30만원 이상의 제품을 구입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집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위해서는 어설픈 반자동 기계보다
차라리 캡슐커피가 나을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캡슐커피의 경우 다양한 원두를 즐기지 못하고,
그 회사만의 캡슐을 계속 사야한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드시려는 분들께는 스테인레스 모카포트를 우선적으로 추천하고 싶고요,
꼭 기계식 에스프레소를 원하신다면 경제사정에 따라 구입여부를 결정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이상 집에서 새로 원두커피를 드시려고 생각 중인 분들을 위한 4단계였습니다.
1단계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시다 보면 실속 있게 맛있는 커피를 드실 수 있고,
3단계까지만 되셔도 날씨와 기분에 따라 다양한 커피를 즐기거나 대접하실 수 있게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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