率土山房/愚石의 삶에 音樂과 茶가 없었다면

당신은 어떤 노래를 들을 때 그곳이 생각나나요?~~~~김동률 - 출발

우석푸른바다 2020. 1. 14. 15:25

나는 여행을 가지 못할 때에 그 노래를 듣는다.

노래 속에는 그곳이 스며들어있다.

누구나 여행지에서 노래와 관련된 추억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

성시경의 제주도 푸른 밤,

장범준의 여수 밤바다 등

 

특정 여행지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들이 많지만,

나만의 여행지를 떠오르게 하는 노래들 말이다.

나 또한 그러한 노래들이 참 많다.

 

처음 혼자서 여행을 떠났을 때,

패기 있게 출발은 했지만 속으로는 참 겁도 나고 두려움이 컸더란다.

혼자서 잘할 수 있을까,

길을 잃으면 어떡하지,

밥은 어떻게 혼자 먹지,

혼자 여행을 왔다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많은 생각으로 걱정이던 그때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이 바로 이 노래였다.

 

 

김동률 - 출발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멍하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 줄 테니까

 

너무나 경쾌한 멜로디에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했던 가사들.

특히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이 부분은 첫 여행에 긴장해 있던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길을 잃어도 된다고 멍하니 앉아서 쉬다

다시 걸으면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함께 걸어주는 것 같았다.

혼자 여행에 대한 두려움보다 설렘을

더 느끼게 해 주었던 김동률의 출발.

그래서 우연히 이 노래를 듣게 될 때면,

특히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며 걸었던

불국사와 석굴암 사이의 산책로가 선명하게 생각이 난다.

그때의 감정까지도.

 

이후 여행을 다니면서도 김동률의 출발을 플레이리스트에 넣

어서 듣고는 했지만,

 

여전히 "김동률의 출발 = 첫 혼자 여행지 경주"가 생각이 나는 노래이다.

 

 

 

'춘천' 하면 떠오르는 노래도 있다.

바로 치즈의 'Madeleine Love'이다.

춘천으로 가던 차 안에서 신나게 따라 부르던 노래였는데,

그 날의 화창했던 날씨와 나의 기분이 노래와 딱 맞아서 함께 했던

친구들과 계속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결과 다른 기회로 춘천을 방문하게 될 때에도

나는 'Madeleine Love'을 듣게 되었고,

이 노래를 들으면 춘천과 함께 아주 파랗고 맑은 하늘이 떠오른다.

그때 함께 했던 이들까지.

 

두 번째 파리 여행을 갔을 때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선택해야 할 때였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이 있었지만 새로운 일이 하고 싶어 고민이 많았을 적.

용기를 내서 다른 일을 도전해야 할지,

아니면 현실에 안주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해야 할지,

앞이 막막했던 시간이었다.

파리에서의 시간도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고민이 더 컸기에,

숙소 근처 공원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때 들었던 박원의 나.

 

박원 -

두렵고 강하고 알 수 없는 나의 이 다짐들이 아직까지 내 남은 삶에 큰 도움이 안 돼

네가 겪은 불행은 사실 큰 위로가 됐고 나보다 힘들고 슬픈 사람만 찾아내며 용기를 내

오늘도 나는 나에게 많은 핑계를 해댔고 스스로 만든 서러운 하루에 갇혀서

그렇게 나는 내일도 변하지 않겠지 몇 번을 깨져도 같겠지 내가 기대가 안 돼

나 뭐 잠깐은 변할 수 있겠지 결국엔 다시 똑같겠지 내가 이해가 안 돼

그렇게 나는 남들과 다르다 믿겠지 밤이 되면 또 난 괜찮겠지 내가 용서가 안 돼

나 뭘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또 난 깨닫겠지 그래서 기대가 안 돼

 

"괜찮다"라는 위로를 건네는 노래보다,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나를 질책하고 닦달했던 노래.

그에 반해 내 눈 앞에 펼쳐졌던 파리의 한 작은 공원.

그렇기에 오히려 더 위로가 되었던 노래이다.

노래를 들으며 울컥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하며 공감할 수 있었던 노래.

아직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면서

마음껏 나에 대해 고민했던 파리의 한 작은 공원이 떠오른다.

 

그밖에도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센치한 감성에 젖을 수 있게 해 주었던 성시경의 태양계.

음으로 여행지에서 아무 목적 없이 산책을 하며 들었던 유희열의 공원에서.

북 스테이를 하며 감성을 더 충만하게 해 주었던 적재의 별 보러 가자.

순례길을 걸으며 정말 힘이 들 때 용기를 주었던

 

정인, 윤종신의 오르막길과 god의 길.

사람도 하나 없고 안개가 가득해 무서웠던 길을

환상의 나라로 가는 길처럼 느끼게 만들어 준 아이유,

김동률의 동화 등등 많은 노래들이 다양한 기억들,

다양한 곳들과 연결되어 있다.

 

 

일상을 보내다가 우연히 이 노래들을 들으면 그

때의 그곳이 생각나면서,

꼭 그곳에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노래를 들었던 순간에 보이던 풍경,

함께 있던 사람들, 그 날의 이야기, 추억까지도.

그렇게 이 노래들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나를 그곳에 데리고 가고는 한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 그때 그곳들이 너무 그리워질 때 이 노래들을 듣는다.

그러면 조금은 위안을 받고는 하니까.

 

당신은 어떤 노래를 들을 때 그곳이 생각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