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음악, 뜨거운 음악
참 추상적인 수식어이긴 하지만 세상에 차가운 음악과 뜨거운 음악이 있다면
아마도 뜨거운 음악이 훨씬 많다.
장르를 불문하고 그렇다.
무언가 뜨거운 감정을 토해내려는,
고조되고 격앙되는 흐름을 지닌,
그래서 듣는 이들을 열광하게 하는 음악 말이다.
차갑고 냉정한 음악이 감동을 줄 수 있느냐 묻는다면
경험에 미루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지난 어느 가을날,
15년 만에 한국을 찾은 폴란드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연주가 딱 그랬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교향곡
‘불안의 시대’를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그는 치밀한 테크닉을 기반으로
각 변주마다 날 선 감각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감정에 매몰되거나 격해지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미건조하게 음을 처리하는 건 아니었고,
완벽하게 균형 잡힌 경이로운 연주를 보여주었다.
이는 피아노 독주 파트를 ‘무심한, 거리를 둔 존재’로
설정해둔 작곡가 번스타인의 의도를 정확히 반영한 결과였다.
지메르만은 현시대 관객들을 함부로 위로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불안의 시대’를 훌륭한 방식으로 펼쳐 보일 뿐이었다.
연주가 끝난 후,
그 감흥을 가슴에 담은 채 삭막하기 짝이 없는
빌딩 사이를 걸어 나가며 어쩌면
이 시대 음악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메르만이 보여줬다는 생각을 했다.
그 반대편에 서있는 음악가라면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있다.
서울 주교좌성당을 찾아 바흐의 파르티타를 연주한 테츨라프는,
경건함과 엄숙함,
절제의 미학을 드러내는 그간의 명연들과 달리 인간의 절망, 좌절, 울분을
그대로 펼쳐 보였다.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처절한 노래를 아주 솔직하게 토해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300여 년 전 바흐가 신께 올렸던 조심스러운 기도는,
이렇게나 창조적으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시대의 청중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근래의 나는 영국의 팝스타 해리 스타일스에 푹 빠져 있다.
그의 신곡 ‘Lights up’은 세련되고 현대적인 도시의 차가움과
그 안에서의 뜨거운 낭만, 욕망을 동시에 품고 있다.
처량하고 외로우면서도 겁 많은, 헛된 공상이나
환상 속에서 일말의 희망 혹은 행복의 가능성을 찾는 불쌍한 우리의 모습들이.
음악은 참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비슷비슷한 모양의 ‘위로’들은 오늘날 표어처럼
그저 떠다니기만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의 내밀한 이야기,
그 자체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더 소중하고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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