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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우석푸른바다 2011. 7. 21. 23:34

 

프리모 레비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이 <이것이 인간인가>이다. 이 소설을 통해 아우슈비츠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전에 읽고 쓴 서평에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학살이나 잔혹 행위에 대한 묘사가 없다’고 쓴 글이 보인다. 감정이입이 절제되면서 그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재미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전작보다 가독성이 더 좋다. 화려한 수식어나 문장 등이 없는 것은 전작과 똑같지만 유태인 빨치산이란 조금 특이한 소재가 관심을 불러온 것이다. 

유태인에 대한 나의 관심과 견해는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마다 조금씩 성장한다. 어릴 때 그들의 엄청난 고난과 노력에 감탄하며 이스라엘을 칭찬했다면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조금씩 변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의 상업화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듯했는데 새로운 정보와 사실을 알게 되면서 또 바뀌게 되었다. 언론과 자본에 의해 왜곡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수용하면서 정확한 중심을 잡지 못한 것이다. 이런 번복과 반복은 시오니즘과 유태인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음으로 인한 탓이 큰데 지금도 가끔은 감정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다.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사실 힘들다. 이전에 각 나라의 유태인이 반목하고 경쟁하고 무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란 적이 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히틀러에게 동족을 판 사실을 읽을 때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기존에 단결과 고난으로 국가를 건설했다는 사실 뒷면의 숨져진 다른 면을 본 탓이다. 이런 다른 면이 이번 소설에서도 그대로 통용된다. 2차 대전 당시 유태인의 나치에 대한 적극적인 반항 혹은 전투는 한두 군데 게토에서 벌어진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무력하게 죽음 속으로 걸음을 옮긴 그들에게 실망감을 느꼈고, 위대한 이스라엘 건설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유태인 빨치산. 참 낯선 용어다. 하지만 역사 속에 그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집단수용소를 탈출해서 전장을 벗어나 하나의 무리를 이루어 나치와 싸웠다. 이 책이 이 모든 투쟁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식을 바꾸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들도 무기를 들고 적극적으로 나치와 싸웠다는 사실을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동유럽에서 유태인 빨치산이 다른 빨치산들에게 공격을 받아 전멸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과 그 지역에서 유태인에 대한 깊은 반목으로 또 다른 빨치산에게 긴장을 품고 살아야 했다는 사실이다. 공동의 적에 대항하는 동시에 같은 편에게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어려움에 그들이 처했다는 사실은 그 시대 유태인에 대한 각 민족의 인식과 행동을 알게 한다.

주인공은 유태인인 멘델이다. 그는 나치에 의해 아내와 아들을 잃고 홀로 숨어 살다가 한 소년을 만난다. 러시아 군인 출신 레오니드다. 군 낙오자인 그와의 만남은 홀로 외롭게 살던 그가 세상 속으로 나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둘의 동행을 통해 작가는 히틀러의 광기, 스탈린의 잔혹성과 위험, 위선적인 유태인의 이중성, 유럽의 반유대 정서를 밖으로 드러낸다. 낯익은 장면도 만나지만 생소하면서 낯선 사실을 만날 때는 2차 대전 당시 유태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정보가 너무나도 아우슈비츠에 집중되면서 놓친 부분이 많음을 깨닫게 된다. 이 때문에 정확한 유태인 평가를 내리는데 왜곡이 일어난다. 반면에 이 소설이 지닌 가치를 다시 재평가하게 만들기도 한다.

빨치산하면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힘겹게 싸워야 했던 그들 이야기를 만났을 때 신선함을 느꼈듯이 이번 소설도 그랬다. 그것은 유태인 빨치산이란 것도 있지만 각 지역마다 많은 빨치산이 존재했고 후방교란에 많은 공헌을 했다는 것과 그 한계도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빨치산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도 삶의 순간과 유머를 즐겼다는 점은 사람이 지닌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게달레 대장의 바이올린은 그것을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그를 통해 또 다른 비극의 한 면을 알게 되지만.

비정규군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 이 한계 속에서도 그들은 생명을 내던져 싸운다. 전투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지만 그 치열함은 분명히 드러난다. 정보와 역정보, 반목과 대립, 현실과 희망, 인간과 비인간 등을 담담하게 말하면서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나’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들은 충격과 불편함을 던져주고, 똑같은 악당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찐한 울림을 준다. 가볍게 읽히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고, 인식의 지평을 조금 더 넓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