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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삶속에는 그 시대를 산 여자의 비극이 담겨 있다 조정래(황토)

우석푸른바다 2011. 7. 21. 23:31

 

 

솔직히 말해 조정래의 작품 중 읽은 것이 몇 편 되지 않는다. <태백산맥>과 <대장경>과 다른 단편집 한 권을 제외하면 없다. 그가 출간한 수많은 책을 생각하면 상당히 적은 편수다. 단순히 권수로 따지면 적지 않지만 그 당시 나의 취향은 조정래가 아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대하장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적지 않은 대하장편을 읽었지만 그것은 학창시절 때뿐이었다. 그래서 <아리랑>이나 <한강>을 사놓고 그냥 묵혀두고 있다. 그의 이름이 한창 알려지고 연재소설이 출간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대장경>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 이 작가 더 읽고 싶다는 마음은 크게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의 책이 보이면 사는 것은 아마도 언젠가는 읽겠지 하는 생각과 그의 이름 때문이다. 그러던 중 새롭게 장편으로 개작된 <황토>는 적은 분량으로 시선을 끌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시대의 비극 속에서 각각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지게 된 점례다. 그녀의 삶속에는 그 시대를 산 여자의 비극이 담겨 있다. 일제, 해방, 6.25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그렇게 길지 않다.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와 시대가 만들어낸 비극은 그녀를 평온하게 놓아두지 않는다. 그리고 각각 다른 남자에게서 얻은 3남매의 사연은 그 누구도 욕할 수 없는 민족의 비극이자 시대가 지닌 한계다. 읽고 있으면 어떻게 저런 일이 생길까 의문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혹은 최선이었음을 알게 된다. 

시작은 그녀의 셋째 아들 동익이 조난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다. 이 사고를 통해 그녀의 삶 중 일부가 드러난다. 바로 동익이 혼혈이라는 것과 첫째 태순이가 막내를 욕하고 엄마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태순이가 동익이를 욕할 때면 그 모자를 함께 붙이는데 한 가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나? 하는 것이다. 그가 바로 일제 시대 주재소 주임 야마다가 알량한 권력으로 자신의 엄마를 범해서 낳은 또 다른 혼혈임을 말이다. 아마 점례는 이 사실을 끝까지 숨겼을 것이다. 외모에서 동익이처럼 이국적이지 않기에 숨기기 쉬웠을 것이고, 그 사실을 까발려 아들에게 충격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왜 그녀의 삶이 이렇게 되었는지 시대의 비극 속에 하나씩 풀려나온다. 그 시발점은 아버지가 일본인 과수원 주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고, 이 기원은 주인이 아내를 범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이 강간당하려는 아내를 구해내고 폭력을 행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텐데 그 시대에 일본인은 법 테두리 밖에 존재했다. 그 전후 사정에 대한 파악 없이 점례 아버지가 끌려가서 치도곤을 당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여기에 불행이 더해진 것은 점례가 예쁘고, 이것을 일본 주임이 본 것이다. 이 다음 수순은 이제는 진부한 듯한 진행으로 이어진다. 주임의 총애는 남에게 권력으로 비치고, 그녀에게 아부하고 부탁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녀의 집안은 조그마한 여유를 누린다. 이것은 다시 그녀가 미군 장교의 첩이 되었을 때 되풀이된다.

그녀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아이 낳은 것을 속이고 독립투사의 아들이었던 박항구와 결혼했던 때다. 그녀의 몸에 남은 흔적의 의미도 모르고, 그녀의 장점을 보고, 그녀가 낳은 아이를 사랑했던 그 남자. 하지만 그는 공산주의자고, 전세가 역전되는 순간 점례에게는 지울 수 없는 짐이자 화가 된다. 결코 길지 않는 시간 동안 여자의 행복을 누리게 만들었고, 현재 그녀를 가장 잘 도와주는 딸 세연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잔인하다. 그가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위해 행동한 것들이 그의 가족에게 강한 여파를 미친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여기서 다시 그녀의 생명을 구한 것은 그녀의 미모다. 

그녀의 미모는 남자들의 시선을 끈다. 전후 복잡한 삶 속에서 원초적 본능이 더없이 강할 때는 더하다. 만약 그녀가 영악하고 이기적이었다면 더 많은 부와 삶의 여유를 누렸을 테지만 시대의 강한 바람 속에 그냥 흘러 다니는 힘없는 여인이다. 힘없다고 그녀가 삶을 포기할 정도로 무기력한 것은 아니다. 그녀가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기에 결코 무너질 수 없다. 이 때문에 그녀의 선택은 우리 어머니의 힘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쓰러져도 다시 바로 서는 그 힘 말이다. 하지만 그녀도 자식들 앞에서는 무력하다. 그녀가 유언처럼 자신의 인생을 하나씩 적기 시작하는 것도 이 무력감을 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긍정하기 위한 노력이다. 미래의 희망이다. 개인적으로 장편으로 개작되었다지만 분량을 더 늘려서 3남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었으면 한다. 그들과 함께 여자 점례 이야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