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道/茶道,,,茶詩

한국의 茶詩

우석푸른바다 2011. 3. 22. 13:37

조선시대의 유명한 다인으로는 초의 선사,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를 꼽을 수 있다. 초의 선사

(1786-1866)는 흥성 장씨로, 이름은 意恂, 자는 中孚子이다. 그는 한국의 茶經으로 불리는 「東茶

頌」과 차의 지침서인 「茶神傳」을 저술하여 우리나라에 차를 재배하고 보급하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 초의는 당시 불교를 배척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도 정약용, 김정희, 김명희 형제,

신위, 홍현주 등 당대의 유수한 유학자들과 교류하며 화운한 시가 60여 수에 이른다. 시로 이름을

남긴 승려가 적지 않으나 초의는 진정한 시승이라고 이를 만하다. 그의 <석천에서 차를 끓이며(石

泉煎茶)>란 시를 감상하여 보자.

 

하늘빛은 물과 같고 물은 연기와 같다         天光如水水如煙

이곳에 와서 지낸 지도 어느덧 반년일세      此地來遊已半年

좋은 밤 몇 번이나 밝은 달 아래 누웠나       良夜幾同明月臥

맑은 강가에서 물새를 바라보며 잠이 드네  淸江今對白鷗眠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 원래 없었으니       嫌猜元不留心內

비방하고 칭찬하는 소리 응당 듣지 않았네   毁譽何曾到耳邊

소매에는 뇌소차가 아직 남아 있으니          袖裏尙餘驚雷笑

구름에 기대어 두릉의 샘물을 담는다네       倚雲更試杜陵泉

 

이 시는 석천의 물로 차를 달이는 심회를 읊고 있다. 젊은 시절 전국의 산천을 유람하였던 초의는

두륜산으로 돌아와 일지암 일대에 두어 칸 모옥을 짓고 그곳에서 차밭을 일구며 늘 차를 마시면서

생활하였다. 일지암에서 자연과 동화된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물빛처럼 푸른 하늘, 맑은 강물

이 흐르는 곳에 차 끓이는 연기 피어오르고, 밝은 달 아래 눕기도 하고 백구와 짝이 되어 잠들기도

한다. 그러니 어찌 세속의 소리가 들리겠는가? 석천의 샘물을 길어다 차를 끓이며 다도를 즐기면

서 티없이 맑은 정신을 잃지 않는 이 생활이야말로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를

마시는 것은 곧 선의 참 맛을 느끼는 것과 같다고 한다. 불법은 고차원의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서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하는 곳에 있으며,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본래 '다

선일미'란 표현은 趙州 선사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어느 날 두 스님이 조주 스님을 방문하였는데

조주가 한 스님에게 '일찍이 이곳에 온 적이 있는가'라고 하니 '예, 왔었습니다'라고 하자 '그럼 차

나 마시고 가게'라고 하였다. 또다시 다른 스님에게 '일찍이 이곳에 온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그

스님은 '한번도 와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조주 스님이 '그렇다면 차나 마시고 가게'라고 하였

다고 한다. 옆에서 이를 지켜본 스님이 '어찌하여 이곳에 온 적이 있는 사람이나 온 적이 없는 사

람이나 차나 마시고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조주 스님이 '자네도 차나 마시

고 가게'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훗날 '끽다거(喫茶去)'라는 화두가 되었고 조주차는 선

가차의 대명사가 되었다.

 

초의 선사는 해마다 봄이 되면 차를 법제하였는데 그 솜씨가 대단하여 차맛이 가히 일품이었다고

한다. 김정희의 동생 김명희가 초의 선사로부터 차를 선사받고 쓴 시를 보자.

 

늙은 스님은 차 고르기를 부처님 고르듯      老僧選茶如選佛

일창일기의 엄한 계율을 지켜                     一槍一旗嚴持律

더욱 묘하게 덖고 말리는데 두루 통달하여   尤工炒焙得圓通

향기와 맛이 바라밀에 든다네                      從香味入波羅密

 

초의의 <다신전>에는 차를 따는 방법에서 만드는 법, 보관법, 끓이는 법, 마시는 법, 다구에 관한

것 등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러한 엄정한 과정에 따라 차를 법제하였으니

그 맛과 향이 어떠할지 짐작할 수 있겠다. 그 맛과 향으로 인하여 바라밀의 세계에 든다고 하였으

니 이것을 두고 '茶禪一味'라고 하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대둔사에서 惠藏禪師를 만나 전통적인 차맛을 맛보고

차를 애호하게 된다. 그가 혜장 선사에게 차를 구하는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듣자니 석름골에는/ 예로부터 좋은 차가 난다네

보리 이삭 팰 철이 오면/ 한 잎 두 잎 새싹이 자란다오

궁하게 사는 사람 채식에 버릇되니/ 노린내 비린내나는 고기 먹을 뜻 없어라

돼지고기와 닭죽 같은/ 호사스런 음식 먹기 어렵도다

현벽병의 고통이 있고/ 때때로 술을 마셔 깨지 않기 때문이라오

바라오니 스님의 숲에 있는 차/ 육우의 차솥에 조금만 채워 주소서

베풀어 주시면 내 병 물리치려니/ 나룻배로 건너 줌과 어찌 다르리오

법대로 불에 쪼여 말리어/ 물에 넣으면 그 차빛 맑기도 하리라

 

위의 시에서 석름골은 백련사 서쪽에 있는 석름골로 보인다. 다산은 오랜 귀양살이로 채식에 길들

여졌고 더군다나 현벽증(근육이 당기는 병)의 고통에다 술을 마셔 깨지 않는 정신을 위해 차가 필

요하니 보내달라고 간청을 한다. 그 차는 다산이 안고 있는 병을 물리칠 수도 있을 것이니, 차를

보내준다면 그 고마움은 마치 나룻배로 강물을 건너게 해 주는 것과 흡사하다고 하였다.

 

차의 덕목에 대하여 저술한 李穆이 읊은 <茶賦>에는 '한 주발을 마시니 굶주린 창자에 물대어 씻

어내고, 두 주발을 다 마시니 상쾌한 혼이 신선이 되려 하고, 세 주발을 마시니 병든 몸이 깨어나

고 두통이 나으며, 네 주발을 마시니 씩씩하고 날랜 기운이 일어나고 근심과 분한 마음이 없어지

며, 다섯 주발을 마시니 색마가 놀라서 달아나고, 여섯 주발을 마시니 해와 달은 사방 한 치 넓이

이고 많은 종류의 물건이 신기하게 보이고, 일곱 주발은 채 절반도 마시지 않았는데 맑은 바람이

옷깃에 불어서 천상계의 문을 바라보니, 봉래산의 많은 수목이 매우 가까운 거리인 듯 하더라'라

고 일곱 주발의 효능에 대하여 말한 바 있는데 다산은 아마도 이러한 차의 효능을 몸소 체험하였

던 것 같다. 다산의 시를 한 편 더 감상하여 보자.

 

비 갠 뒤 새 찻잎 깃발인 양 피어나니    雨後新茶如展旗

차부엌 차멧돌 살펴야 하겠구나           茶구茶蹍漸修治 *(구;石+冓)

동방엔 예부터 차 세금 없었거니          東方自古無茶稅

앞마을 개 짖는 소리 두려워 마라         不怕前村犬吠時

 

비온 뒤 찻잎 싹이 돋아난 것을 보고 지은 시이다. 비온 뒤 돋아난 이 싹을 법제하여 향그런 차를

끓일 것이니 茶具를 미리 살펴야겠다는 시인의 마음에는 잔잔한 기쁨과 설레임이 엿보인다. 혹여

차 세금이라도 걷어갈까 염려도 되겠지만 동방에선 그런 일 없을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

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찻세를 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김종직의 <점필재집>에 '나라에 바칠

차가 경상도 함양에는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백성에게 찻세가 부과되었다'라고 한 것을

보면 찻세가 있었던 것이다. 다산이 남긴 대부분의 다시는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읊은 것이

다. 그와 얽힌 차로는 햇볕에 쬐어 말린 일쇄차(日曬茶), 다산(만덕산) 밑에 있는 만덕리 주민들에

게 만드는 법을 전수한 만덕차가 있다. 또한 다산은 긴 유배생활을 마치고 강진을 떠날 때 다산 초

당에서 가르친 제자들과 <茶信契>를 만들기도 하였다.

 

추사 김정희는 詩․書․畵에 능했던 예술가이면서 학자이면서 또한 다인이기도 하다.

초의 선사와는 동년배 知己로 우의가 두터웠다. 초의 선사가 법제한 차 맛이 그리워 '차를 비는(乞茶)'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수년 이래 햇차는 과천의 나의 집과 한강 정약용의 별저 밑에 맨 먼저 이르렀거늘 벌써 곡우가 지

나고 단오가 가까이 있네. 두륜산의 중은 형체와 그림자도 없어졌단 말인가. 어느 겨를에 햇차를

천리마의 꼬리에 달아서 다다르게 할 것인가....만약 그 대의 게으름 탓이라면 馬祖의 喝과 德山의

몽둥이로 그 버릇을 응징하여 그 근원을 징계할 터이니 깊이깊이 삼가게나. 나는 오월에 거듭 애

석히 바란다네.'

 

위와 같이 해학이 넘치는 글을 보내어 차를 청하기도 하였으며, 언젠가 초의가 추사에게 차를 보

내면서 다른 친구 白坡에게도 전해 줄 것을 부탁하자 좋은 차에 욕심이 난 추사가 '나누어주신 차

를 백파에게 주기가 아깝습니다. 큰 싹과 고아한 향기며 맛이 너무도 뛰어납니다. 한 포만 더 보내

줄 수는 없는지요?'라고 쓴 편지도 있다. 김정희는 연경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맛 본 勝雪茶에

매료되어 차도에 접하게 되었는데 그 차맛을 잊지 못해 '勝雪道人'이라는 호를 쓰기도 하였으며,

제주도의 대정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죽로의 방(竹爐之室)이라는 휘호를 쓰기도 하였다. 죽로는

차 화로에 씌우는 대씌우개이다. 그가 남긴 다시 <혜산철명(惠山啜茗)>이란 시를 감상하여 보자.

 

천하에 둘째가는 샘물                         天下第二泉

게다가 진․홍까지 더하였네                  又重之秦洪

마실 만한 샘물이야 얻을 수 있지만      飮泉猶可得

두 사람은 참으로 함께 하기 어려워라   二妙直難同

 

혜산은 중국 강소성 무석시에 있는 샘물로 천하에 둘째가는 샘물로 秦峴과 洪稚存은 좋은 차를 들

고 가서 차를 끓여 마셨다고 한다. 세상에서 차를 달이기에 알맞은 물을 구할 수는 있지만 차의 맛

과 향을 아는 벗을 얻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을 표현한 시이다. 추사 역시 '참선과 차 끓이는 일로

또 한 해를 보냈다'고 한 시구가 말해주듯 누구 못지 않게 차를 즐겼던 다인이나 차에 관한 시편은

많이 남기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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