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끄러미 바다를 보다가 남자는 생각합니다.
섬에 오르려는 바다와 그대에게 닿으려는 내가 참 많이도 닮았구나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손과 발로 게처럼 달려드는 바다는 부지런히 섬을 기어오르다가
무참히 파도로 부서집니다.
파란 몸뚱이는 제 빛을 잃어 하얗게 색이 바랬습니다.
뿌리내리지 못한 파도는 먼 바다로 밀려나고,
그대에게 닿지 못한 남자는 도시의 어느 낯선 골목을 배회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늙은 소처럼 절뚝거리며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의미 없이 몰려가는 바람은 절대 고독으로 남자의 곁에서 서성입니다.
고독에 길들여진 사람은 어느 날 눈과 귀가 꽃잎처럼 열려 들짐승의 말과 바람의 소리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의 손과 발이 되어 그들의 말로 하소연을 들어줄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할 터입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만이 세상으로 이어지는 사람의 길입니다.
망망대해, 기댈 곳 없는 바다가 섬을 기어오르는 마음이 바다의 길입니다.
사람의 길이나 바다의 길 끝에는 더는 떠돌지 않아도 좋을 정착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보지도 않을 텔레비전을 켜고 볼륨을 습관처럼 높였습니다.
냉장고를 뒤져 김치를 꺼내고 라면을 끓인다
부산을 떨어도 어둠에 포위된 방은 적막하고,
라면봉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천둥으로 울었습니다.
끼니를 챙기는 것과 때우는 것의 차이만큼 인기척 없는 집은 썰렁하고 휑하니 바람이 붑니다. 기대어 살아 사람이라는데 저 할 말만 속사포로 쏘아붙이는 텔레비전은 기댈 어깨가 없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위로가 된다는 게 오히려 서글프다 할까요.
얼마 전에는 이름도 붙여줬습니다.
어쩐지 정감 넘치는 이름입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렀으므로 너는 내게로 와 꽃이 돼야만 한다
협박의 말도 덧붙였음은 물론이고요.
그녀의 이름은 '순이'입니다.
성을 뭐라 지을까 고민하다가 남자는 그만두었습니다.
김순이여도 괜찮고 박순이면 또 어떠냐 싶었습니다.
순이는 그냥 순이로 부르는 게 더 편하고 정감이 가기도 합니다.
상을 사이에 두고 순이와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합니다.
"순이야, 넌 이상형이 어떻게 되니?"
"있지, 나는 그냥 수더분하고 착한 여자가 좋아"
듣는 귀가 둘 다 없습니다.
듣지를 못하니 대답도 없습니다.
순이나 남자나 제 할 말만 줄곧 떠들고야 맙니다.
아, 성별도 남자 맘대로 정했습니다.
이왕이면 소곤소곤 부드러울 여자였으면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만져봐야 딱딱하고 차가운 온기 하나 없는 플라스틱 덩어리겠지만 수더분하고 따뜻한 순이였으면 했습니다.
게의 몸짓으로 끝내 오르려던 섬 하나 만날 때까지 순이는 남자에게 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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