愚石의,,,,,,허수아비

(47)그대에게 전하는 편지

우석푸른바다 2017. 9. 26. 03:03

기분 좋은 빗소리에 잠에서 깬 새벽이었습니다. 그대의 밤은 안녕하셨는지요?

 

잠을 오래 청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세상을 토닥이는 빗소리 덕분에 피곤함도 위로를 받는 것만 같았습니다.

빗소리는 마치 그대가 건네준 다정한 말들을 닮아 있었습니다.

 

 

 

 

하늘의 손길에 토닥거리던 창문을 열었습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하늘은 언제나 묘한 감성을 남깁니다.

그리고 음악을 틀었고 달지 않은 커피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또 펜을 들고 글을 써내려갑니다.

엉덩이 끈질김이 좋지 않은 제가 이른 시간부터 글을 쓸 수 있는 까닭은 그대란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안도와 행복을 느낄 때 문뜩 며칠 전 보았던 시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인지도 모른다

 

 

 

 

유치환의 행복이었습니다.

아내를 두고도 다른 사람을 사랑해버린 그의 사랑을 변호해줄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가 교통사고로 죽는 순간까지 20년 동안 애절함으로 꾹꾹 눌러쓴 글귀가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어쩌면 그런 그가 지금 저의 얼굴을 봤다면 저 역시도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의 얼굴이었겠습니다.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는 기다림이,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을 보내는 그 마음이 제게는 분명 있으니까요.

 

 

 

 

하루를 살아가는 작은 이야기들부터 꼬박 며칠 밤을 새도 다 못할 사연이라 부를만한 이야기까지.

그걸 전하고 싶었던 발신인은 분명 그것을 받을 사람을 마음깊이 채웠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길가에 핀 꽃 같은 마음으로 알아봐달란 손짓이겠고

산등성이 작은 골짜기마다 핀 작은 새싹도 보여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겠습니다.

 

 

 

 

때론 행복을 느끼고 꿈꾸면서도 세상의 고달픈 바람에 시달리는 나날입니다.

그리고 나부끼어 헝클어진 세상 어딘가로 나는 날아가고 있겠지요.

그 남루한 나부낌이 당신의 곁으로 가는 길이라 나는 생각합니다.

멀고 험해도 진정 갈 수 있다는 서툴지만 강한 진심이 제게는 있다고 믿으니까요.

      

그렇게 한참이나 어떤 생각의 풍경에 잠기고 난 뒤 살짝 깊은 숨과 함께 다시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빗줄기가 온 세상에 내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란 그의 문구를 떠올립니다.

 

저는 저런 비가 될 수 있을까요?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있어도

지상 가장 낮은 곳에 내릴 수 있는 으로서 행복하고 또 행복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대란 세상 어디에도 창밖에 내리는 비처럼 토닥임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