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듣기’에 대한 네 가지 생각
#1.
우리가 보는 풍경에는 주인이 없다.
땅의 주인, 나무의 주인, 건물의 주인은 있을지 몰라도 어느 각도에서 어떤 마음으로 그 풍경을 보느냐에 따라 감흥도,
인상도 달라진다. 문득 음악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창작물에 대해 권리를 가지는 사람은 있지만 그 음악이 듣는 이에게 주는 감상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다.
누구와 함께 듣는지, 어떤 온도에서 어떤 기분으로 듣는지,
어떤 차림으로 어떤 표정을 지은 채 듣고 있는지가 음악의 가치를 정한다.
머릿속 생각들이 선율의 감각을 바꾸고,
심장의 박동이 박자를 만든다는 점에서 음악을 듣는다는 건 어쩌면 온 몸으로 하는 일이다.
((듣고픈 곡--Lara Fabian - Lara Fabian))
#2.
흘러가는 음악에 대해 생각한다.
음악은 소유하기가 어렵다.
벽에 걸어두거나 주머니에 넣어둔 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만질 수가 없다.
찰나를 이룬 음의 언어들이 빠르게 다음의 차례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붙잡으려 해도 할 수가 없다.
그저 신경을 곤두세우거나, 혹은 감각이 자연히 반응하도록 내버려둘 뿐이다.
((듣고픈 곡 --Natasha St.Pier - All I have is my soul))
#3.
작곡가는 자신이 서 있는 세계를 기록한다.
수백 년 전의 작곡가는 자연을 두려워하고 그것들이 주는 영감에 귀를 기울였다.
작곡가 머레이 쉐이퍼는 '중요한 일을 하는 건 자연이고, 작곡가는 비서다’라고 적었다.
오늘날 자연을 두려워하는 이는 없고,
개개인의 내면으로부터 발현되는 목소리에 집중하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고요하고 내밀한 이야기들이 더 소중하다.
((듣고픈 곡 --Viktor Lazlo – Stories))
#4.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침묵’이다.
작곡가 존 케이지는 4분 33초 동안 침묵함으로써 기계에 자리를 내준 피아노를 정확히 묘사했다.
기계는 침묵하지 않는다.
늙지도, 지치지도 않고 영원히 산다.
침묵이 없으면 음악을 기다릴 수 없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에 따르면 침묵이 있어야 첫 음이 솟아나올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음만이 청중을 초대할 수 있다.
침묵이 없는 음악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기대도 떨림도 여운도 없다. 음악을 소음이 아닌 음악으로 만드는 건 침묵이다.
(((듣고픈 곡 ---이지상~~그리움 (해금 연주곡)))
'愚石의,,,,,,허수아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58)기타의 처절한 선율이 귀에 닿았다. (0) | 2019.12.23 |
---|---|
(57)愚石 이제 나머지 세월 무얼 하며 살겠느냐 물으면 (0) | 2018.01.06 |
(56)꽃보다 더 진한 피빛 사랑을 찾아야 하겠다 (0) | 2018.01.06 |
(55)가슴에 명장면 하나 남기려 여행을 합니다 (0) | 2018.01.06 |
(54)오래된 영화를 감상하다,,,,,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0) | 2018.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