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
이기윤 (지은이)
차가 좋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그것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사랑받아 온 기호 음료라는 한마디로 충분하다. 한동안 우리는 차생활을 잊고 지내 왔다. 차뿐만 아니라 훌륭한 문화 유산을 대부분 잊고 지내 왔다.
이제 어느 정도 여유를 누리게 되니 한동안 접어 두었던 문화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고 있다. 이 책은 우리의 오랜 문화와 멋과 향을 간직하고 있는 차에 대한 모든 것을 사진과 함께 보여 주고 있다
오랜만에 헌책방을 갔다. 새로 옮긴 헌책방을 구경 갔다가 괜찮은 책들을 구입한 경험이 있어서 살만한 책들이 있을까 하고 겸사겸사 옮긴 발걸음이었다. 책을 보는 안목이 없기도 하고, 새책만 좋아하는 나라서 헌책방 나들이가 서점을 들어가는 것만큼 설레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말 예기치 못한 책들을 만났을 때 헌책방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 책들이 많지 않지만 그런 기대감 때문인지 그날은 책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빈 손으로 털레털레 걸어 나오는데 입구의 구석 책장이 눈에 띄었다. 내가 아직 훑어보지 않은 책장이라 쪼그리고 앉아서 책을 보다보니 대원사 시리즈 책이 보였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이 눈에 들어와 바로 집어 들었다. 단돈 2000원에 데려온 <다도>. 같이 간 친구는 다도에 대한 정말 기본적인 것만 알려줄 뿐이라고 타박했지만, 나는 그런 기본이 없으니 괜찮다며 값을 치르고 헌책방을 나섰다.
헌책방을 서성이다 지친 다리를 쉬어 주기 위해 친구와 함께 찻집을 갔다. 시원한 레몬에이드를 시켜놓고 구입한 책을 꺼냈다. 빈 손으로 나올 뻔 했던 내 손길을 무안하게 하지 않았던 책이였기에 조금은 뿌듯했다. 평상시에 다기에 차를 우려 마시는 걸 참 좋아했는데, 내게 부족한 상식을 보완시켜 보자 하는 마음에서 읽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첫장을 열자마자 나의 몰상식이 바로 드러났다. 잎차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우리나라 토종 차나무에 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씨앗으로만 번식한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당연히 차나무라면 씨앗으로 번식을 하겠지 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막상 토종 차나무가 그런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책의 초반은 이처럼 차나무 사진도 보여주는 <사진으로 보는 다도>였다. 내가 먹어왔던 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재배되는지에 대해 가볍게 알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다 차를 마실 때 쓰는 도구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또 놀라고 말았다. 몇년 전에 나름 비싼 다기를 구입했는데, 유독 용도를 모르는 다구가 있었다. 이리 저리 돌려보아도 무엇에 쓰는지 몰라 그냥 다기를 꺼낼 때마다 방치해 두고 말았는데, 그게 다기의 두껑 받침대였다니. 그 다구의 용도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했다면 쉽게 알아봤을 텐데, 게으름이 부른 방관이었다.
사진으로 본 다도를 보고 나면 본격적인 다도에 관해 나온다. 현대 생활에 어우러지는 차의 이야기와, 차를 우리는 방법, 차의 효능 등을 알려준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커다란 앎을 기대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차 생활을 즐기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에 조금 더 보태서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여기 저기서 주워 들은 지식들을 정리해주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다도에 대해서 이렇게 책을 엮을 만큼 많은 정보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 찰나, 차의 역사에 대해서 나왔다. 차가 어떻게 고대부터 사람들의 생활 속에 파고 들어 문화를 만들어 갔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옛 선인들이 남긴 글만 보더라도 차에 대한 격찬은 넘쳐나고, 생활 속에 퍼져있는 차의 향유를 만끽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현대의 차 문화는 본질을 잃어버린지 오래고, 서양의 차 문화를 닮아가고 있을 뿐이다. 잎차를 우려 마시는 것도 우리의 문화라고 말할 수 없지만, 선인들로부터 내려온 문화이니 만큼 외국의 차문화보다 익숙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문화가 사그러져 가는게 안타까웠다. 차의 향긋함과 단아함을 시로 읊었던 선인들의 소박함이 지금도 묻어나는데 지금은 차의 향취를 맡기도 힘드니 말이다.
차 문화의 사그라듬을 온전히 현대의 무관심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차 문화가 보편화 되지 못한 시대는 조선 시대 부터였다. 불교가 쇠퇴의 길을 걸으면서 차 문화도 서서히 종적을 감춘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여러 자료를 통해서 차 문화가 온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차는 대부분 남방 지역에서 많이 자랐지만,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가 요구한 세폐에 감당하기 힘든 차의 양이 포함되어 차가 일상의 문화로 자리매김 할 수 없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시기에 청나라에 받쳐야 할 차나무를 재배해야 했던 농민들의 분노가 차밭을 불질러 버리는 사태까지 일어났으니 차가 서민들의 생활에 정착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차를 마시는 법 부터, 차의 역사를 알고 나니 차에 대한 애착이 좀 더 느껴졌다. 이 책의 마무리도 차를 알았으면 작은 공간이라도 다실을 꾸며보라고 했다. 비싸게 주고 샀다는 이유 만으로 옷장 깊숙이 다기를 숨겨놓았는데, 귀때그릇과 잔 하나만 꺼내놓더라도 차를 가까이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실을 꾸밀 여력이 되지 않으니 책상 앞에 찻잔과 귀때그릇을 놓고 차를 자주 우려 마시며 차를 가까이 하는 생활을 해야 겠다. 여기 저기서 얻은 차도 많고, 구입한 차도 있으니 가을 바람이 심심치 않게 불어대는 요즘에 차의 향에 취해 보려 한다.
1993년 12월 에
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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