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먹물들에 대한 비웃음' 이라 붙여 놓고 한참 스스로를 비웃었다. 나 역시 이른바 배웠다는 '먹물'이 아니던가. 머리 속으로는 온갖 것들을 생각하면서 막상 몸뚱아리 움직일 줄 모르고 말로만 떠들어대는 존재가 아니더냐. 그러면서도 스스로 먹물이랍시고 이렇게 글줄을 긁어대고 있는 것이 아니더냐.
그래도 이 소설을 소개하는데 이 만큼 적절한 비유도 찾기 힘들 것 같다. 책은 제목 그대로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 刊)'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책의 저자는 노벨상을 두 번이나 탈 뻔했던 유명한 '먹물'이다. 소설의 형식을 빌었지만 조르바는 그에게 정신적인 스승이 돼 주었던 실제 인물이었다.
'정신적인 스승'이라는 말의 어감이 마음에 걸린다. 조르바를 머리가 허옇게 선 인도의 구루(구도자 정도로 보면 될까)처럼 여겨지게 만들었을 것 같다. 사실 조르바는 저자인 니코르 카잔차키스에게 "짊어지고 있는 책보따리를 몽땅 싸질러 태워버리고 나면 정신을 좀 차릴지도 모를 것"이라며 거나하게 술에나 취하자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조르바는 언뜻 보기에 영락없는 난봉꾼이다. 술과 음악에 미쳐있고 여자만 보면 팔짝팔짝 뛰는 모습이란…그가 "계집이란 자고로…" 하면서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조르바는 도무지 앞뒤를 재는 법도 없고 당장 숨쉬는 그 순간에만 몰두한다. 한 마디로 거침이 없다고 할까. 도자기를 빚는데 손가락이 걸리적 거리면 도끼로 잘라버린다. 모든 것을 투자했던 사업이 일 순간에 무너진 후에도 "빈털터리가 되었으니 아무 것도 우릴 방해할 것이 없다"며 오히려 홀연해진다.
그는 야성을 지키고 있는 자연인이다. 무당이기도 하고 진정한 의미의 승려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자기 손 안에 쥐고 산다. 어줍잖지만 불가의 말을 빌자면 '지금 여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머리 속에 잔뜩 이런저런 잡념들을 만들어가며 - 미래에 대한 것이건 과거에 대한 것이건 - 막상 현재를 놓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의 눈엔 매일 아침 뜨는 태양이 다르고 늘 보던 길마저 새롭다. 언덕을 구르는 돌멩이를 보면 "돌멩이조차 생명을 가지고 있구나"면서 아이처럼 탄성을 지른다. 세상 모든 것이 늘 신비롭고 즐겁다. 그가 술에 취해 추는 춤은 신들린 무당의 춤처럼 우주를 이야기한다.
반면 저자이자 작중 화자인 주인공은 전형적인 '먹물'의 모습이다. 세상사 근심걱정을 혼자 짊어지고 앉아 있고 본능이 부르는 소리마저 애써 억누르려 한다. 돌이키지 못할 어제에 집착하고 오지도 않은 내일에 끙끙대기 일쑤다. 자유로운 조르바의 모습을 부러워하면서도 좀처럼 몸도 마음도 따라주질 않는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조르바를 글을 통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사실 조르바가 실제로 앞에 서 있다면 그와 얼마나 친해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흔한 말로 이해는 하지만 받아들이기는 힘들것만 같다. 아니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는지조차 자신이 없다. 그가 자비를 베푼다면 속세의 때묻은 일들에 얽혀 있는 머리를 세게 한 번 쥐어박아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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