愚石의,,, 感性/愚石의,,, 冊-書架

묵향으로 만나 본 법정스님의 멋과 향기

우석푸른바다 2011. 2. 20. 23:05

 

“세상에서 법정스님의 글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스님의 한글서체와 그 내용에 담긴 매력과 가치를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그에게도 안부를 묻고 세사(世事)를 얘기하며 가까이 지낸 지인들이 있었고,
피붙이처럼 아끼고 가르쳐온 제자들이 있었고,
늘 마음에 담고 귀히 여겼던 경구(警句)들이 있었더군요.  
스님은 마음이 내키면 이들에게 마음을 담아 써주곤 했나 봅니다.
이게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었으면 ‘붓장난’이라고 표현하셨을까요.
마음이 가는대로, 마주 앉은 사람마다에 그 마음을 담아 쓰신 것,
그러니 그건 ‘작품’이 아니라 즐거운 ‘장난’인 게지요.
그 '장난'을 두고 법정스님은 이렇게 쓰셨더군요.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겨 써보기도 했고
친지들에게 궁금한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멀리서 고요히 침묵하고 있는 산의 자태를 감아보기도 했고
내 앞에 놓인 찻잔에서 풍겨 나오는 차향을 그려 보기도 했습니다.”


 




‘장난’삼아 쓴 것 치고는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무겁거나 또 어렵지도 않습니다.
스님이 서법을 별도로 공부를 했을까요마는,
마치 물 흐르듯이 써내려간 서체는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듯이 따사롭습니다.
또 군자의 멋스러움과 깨달은 자의 향기도 어려 있습니다.
더러 명문(名文)을 인용한 것도 있습니다만,    
대개는 마음에서 솟아나는 샘물 같이 그냥 자신의 언어를 쓴 것들인데,
평소 스님의 언행(言行)이 그대로 녹아 있었습니다.

다섯 이랑 대를 심고
다섯 이랑 채소 갈고
한나절은 좌선 하고
한나절은 글을 읽고



날마다 山(산)을 봐도 볼수록 좋고,
물소리 늘 들어도 들을 수록 좋네.
저절로 귀와 눈 맑게 트이니
소리와 빛 가운데 평안이 있네

--------------------------

흐르는 물은 山(산)을 내려와도 연연하지 않고
흰구름은 골짜기로 들어가도 그저 무심하다.
한 몸이 가고 옴 물과 구름 같고
몸은 다시 오지만 눈에는 처음이네

--------------------------

옳거니 그르거니 내 몰라라,
산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세계랴,
흰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이해인 수녀님에게 써준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도 눈길을 끕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91년 여름 佛日庵에서 구름수녀님의 청으로 붓장난하다.

(* ‘구름수녀’는 이해인 수녀님을 지칭한 것으로, ‘구름’은 이해인 수녀님의 세례명 ‘클라우디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제자인 덕현(德賢)스님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고독한 구도자의 길을 담담히 안내하고 있는데,
그 한 구석에서는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부정(父情) 같은 것이 진하게 느껴지는군요.

德賢(덕현)에게
다시 겨울 安居(안거)를 맞이하게 되었다. 혼자서 지내는데 고생이 많을 줄 믿는다. 修行(수행)은 누가 대신해서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어차피 홀로 할 수밖에 없다. 여럿 속에 있더라도 隱者(은자)처럼 지내는 것이 出家?門(출가?문)의 살림살이라 홀로 있는 시간에 충만된 삶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홀로 지내더라도 자신의 질서 안에서 지낸다면 여럿 속에서 얻는 利害(이해)에 못지않은 德(덕)을 갖추게 될 것이다. 소라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93년 冬安居 結制日 水流山房에서 합장


장준하 선생 장남 장호권 선생 부부

전시장에서 뜻깊은 분을 만났습니다.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선생 부부를 만났습니다.
물론 우연히 만난 것은 아니고 지인의 소개로 만났는데요,
장 선생을 두고 제가 ‘뜻깊은 분’이라고 표현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법정스님이 세상사에 관심을 갖도록 이끈 분이 바로 장준하 선생이라고 합니다.
장호권 선생은 법정스님이 봉은사에 머무실 때 여러 번 뵈었답니다.
그 때 그곳에서 장준하 선생, 법정스님 등 이른바 ‘재야인사’들이 더러 만남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 장호권 선생도 어린나이에 더러 동석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점심을 먹고는 현장(玄藏)스님을 잠시 뵙고 차 한 잔을 나눴습니다.
스님과는 이미 두어 번 만난 적이 있어 구면입니다.
현장스님은 이번 전시회 준비하신 분입니다.
오랫동안 법정스님을 곁에서 모셔왔고,
그러다보니 법정스님 주변의 인물들을 두루 아는 분이죠.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법정스님 지인들이 소장한 것을 빌려온 것들이랍니다.

오늘, 한번 뵌 적도 없는 법정스님이 다시 그립습니다.
고독한 구도자의 길을 살다가신 스님.
그 스님의 가르침과 온화한 미소를
이제사 제가 깨닫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