愚石의,,,삶 사랑 인생

히말라야의 도인

우석푸른바다 2022. 1. 27. 17:42

<히말라야의 도인>
네팔 히말라야자락 산골 민가에서 빈방을 빌려 지냈다. 
이틀에 한번 산을 내려가 먹을 것을 사서 배낭에 짊어지고 오곤 하였는데, 
아래 도시에 내려가면 꼭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남루한 차림새 치고는 너무도 멋있고 잘 생긴 힌두수행자였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흰 수염에 주황색 샤프론을 걸친 그는 
마치 히말라야 설산에서 갓 내려온 고행자의 풍모였다.
게다가 잔잔하게 웃는 표정은 삶의 희로애락은 이미 건너간 도인의 경지처럼 보였다.


그가 앉은 곳은 늘 쓰레기더미나 쇠똥이 가득한 주변이었으나, 
주변엔 항상 사람들이 들끓었고 옆의 바닥에는 동전과 지폐로 가득하였다. 
여행자들과 구도의 열정에 타오르는 순례자들이 차원 높은 질문을 던지면 
그는 대답대신 항상 그윽한 연민의 눈빛과 독특한 신비의 미소로 대신하곤 하였다.
나는 시간만 되면 그곳에서 하루 나 이 삼일 살다가 다시 아래 도시로 내려가곤 하였는데, 
어느 날 네팔 중부의 한 도시를 어슬렁거리다 뜻밖에 그 수행자를 만났다. 


역시 허름한 차림으로 특유의 잔잔한 미소를 띠며 허접한 길옆에 앉아있었는데, 
너무 반가운 나머지 나는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여러 해 동안 히말라야자락에서 그를 만났고 늘 거기서 눈인사를 주고받았으나 
뜻밖에도 그는 나를 전혀 모르는 시늉을 하였다. 
더구나 자신은 히말라야 자락에 간 적도 없으며 이 지역사람이라고 우기는 것이었으니, 
할 수 없이 겸연쩍은 웃음을 남기고 일어서는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그는 계절마다 여행지를 옮겨 다니며 여행자들의 동경을 받는 가짜 수행자였다. 
베테랑 여행자들은 그를 어느 도시 유명 호텔 레스토랑에서 보았다는 둥, 
고급 여행자버스를 함께 타고 왔다는 등의 이야기를 귀띔해 주었다. 
인도의 유행자(流行者)들 중에 이런 부류는 얼마든지 있으니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그랬다.


다소 씁쓸했지만 그의 온화한 눈빛과 은은한 미소와 침묵은 그의 포장지였다. 
그 포장지는 그를 히말라야의 고행자로 둔갑시켰고 
사람들은 그 포장지만 보고 자기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며 때론 존경의 눈빛을 보내고 
경건한 마음을 내었으며 기꺼이 지갑을 열기도 하였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포장지에 속으며 사는지도 모른다. 
보고 듣고 감각하는 모든 대상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포장지를 보며 그들을 평가하고, 
그 포장지에 자기 나름대로의 마음을 내고 기대를 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것은 곧 실망으로 바뀔 허망한 대상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한 자신은 어떤 색깔의 포장지로 포장하며 사는지도 통찰해 볼 일이다. 


그것들은 당장 나를 꽤 근사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고 
때론 어떤 이익까지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나의 자유를 얽어매는 사슬이 되며,
나를 나 아닌 것으로 만들어 끊임없이 자신을 단속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다.


그 모든 포장지를 뜯고 
그 속에 든 내용물에 직면했을 때 진정한 자기 모습이 있지 않을까? 
속을 다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자연스러워질 때 더 이상 방어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과 남에게 더욱 솔직해지며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2021 년  10월의 어느날  네팔의 어느  찻집에서 느낀,,,,,,,(우석)